에스토니아가 내게 준 선물

김남희의 여행의 일상
글과 사진 김남희

에스토니아가 내게 준 선물

6월의 에스토니아는 찬란했다. 뾰족탑과 둥근 지붕의 파스텔 색 건물이 가득한 탈린은 동화 속 도시 같았다. 포슬포슬한 맑은 공기, 낭창낭창하게 감겨드는 햇살, 발트해에서 불어오는 바삭바삭한 바람. 발끝이 살짝 저려올 정도로 기분이 좋았다. 탈린에서 버스로 2시간쯤 걸리는 라헤마 국립공원에 들어서니 그런 기분이 배가되었다. 키 큰 나무들이 무성한 숲에 나는 혼자 서 있었다. 바늘잎나무가 내뿜는 푸른 기운이 몸을 찔러왔다. 나는 걸음을 멈추고 팔을 양쪽으로 쭉 뻗었다. 그 성성한 기운을 세포의 가장 깊은 곳까지 받아들이고 싶었다. 숲에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고, 길에는 차도 다니지 않았다. 숲에 파묻히듯 숨어 있는 호스텔은 아늑하고 고요했다. 빛의 물결에 잠긴 거실 벽난로에는 장작이 타오르고 있었다. 세상의 소란과 동떨어진 세계였다.
거실에서 배낭을 메고 들어서는 여성과 마주쳤다. 스위스에서 온 조아나. 30대 초반의 그녀는 3주간 발트 3국을 홀로 여행하고 있었다. 짐을 내려놓기 무섭게 밖으로 나서는 내게 조아나가 물었다. 산책하러 가는 길이라면 동행해도 되겠느냐고. 우리는 3시간 남짓 고즈넉한 숲을 함께 걸었다. 전나무와 자작나무, 가문비나무가 우거진 숲길은 바다까지 뻗어 있었다. 백야가 시작될 무렵이라 늦은 밤까지 사위는 환했다.

다음 날 아침, 조아나와 함께 숙소를 나섰다. 그녀와 나는 호흡이 잘 맞았다. 우리는 걸을 때면 말없이 주변의 풍경에 몰입하고, 쉴 때나 입을 여는 스타일이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걸으며 저마다의 생각에 잠겼고, 벤치에 앉아 간식을 먹을 때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건네는 농담에 그녀는 재치 있게 응대하곤 했다. 두어 시간을 함께 걸은 후 갈림길에 다다랐다. 오후에 비니스투에 가고 싶었던 나는 짧은 코스를, 조아나는 긴 코스를 선택할 예정이었다. 조아나가 조심스러운 태도로 내게 물었다. “괜찮다면 나도 짧은 코스를 걷고 너랑 비니스투에 가고 싶어. 우리는 다시 못 만날지도 모르잖아. 내 계획은 미뤄두고 너랑 하루를 보내고 싶어.” 그렇게 우리는 6월의 초여름 숲과 카스무의 바다를 함께 걸었다. 물 빠진 인디고 이불처럼 부드러운 빛깔의 바다에는 커다란 돌들이 박혀 있었다. 돌 그림자가 파도도 없는 수면에 고스란히 비치고 있었다. 길이 아름다워 자주 걸음을 멈춰야 했다. 결국 한 대뿐인 비니스투행 버스를 놓쳤다. 도로에서 히치하이킹을 시도했지만 운이 따르지 않았다. 전날은 바로 히치하이킹에 성공했는데 그날은 1시간을 기다려도 태워주는 차가 없었다. 그런데도 아쉽지 않았던 건 그 기다림의 시간조차 즐거웠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스크림으로 우울한 기분을 날리자.” 그녀와 나는 마을에 하나뿐인 가게로 달려가 아이스크림을 입에 물었다. 다시 30분을 걸어 숙소로 돌아오던 길(우리는 이미 22km를 걸은 후였다), 지지 않는 저녁해가 따라오고 있었다.

저녁을 먹으면서 서로 살아온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그녀와 나는 닮은 점이 있었다. 조아나도 나처럼 스스로 선택했던 길을 버리고 다른 길을 찾았던 터였다. 누군가의 엄마, 아내, 며느리가 아닌, 자기 자신으로만 남고자 한 욕망 때문에 감당해야 했던 고통의 시간을 그녀도 나도 통과한 셈이었다. 나는 아주 오래 전에, 그녀는 바로 몇 달 전에. 그녀의 경우는 나보다 훨씬 나빠서 결혼 이후 내내 사랑이라는 이름의 구속에 갇혀 있었다. 혼자가 된 지금이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다며, 삶이 훨씬 가벼워졌다며 그녀는 웃었다. 인생의 모든 것을 스스로 결정해야만 하고, 모든 어려움을 혼자 헤쳐 나가야만 하는 이 자유롭고도 쓸쓸한 삶이 주는 기쁨과 슬픔을 그녀도 곧 알게 될 터였다. 각자의 방으로 가기 전, 그녀가 나를 끌어안고 말했다. “너와 함께 걸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어. 고마워.” 나도 같은 마음을 전했다. 자작나무 사이로 스며든 달빛이 환한 밤이었다. 벽난로의 온기가 남은 방은 따뜻했다. 벽 너머는 조아나의 방이었다. 어쩐지 위로가 되는 밤이었다.

다음 날 우리는 다시 비니스투로 향했다. 히치하이킹에 실패해 못 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숙소의 주인 아날리자가 태워다주겠다며 나섰다. 그녀는 대부분의 라헤마 주민들처럼 1년에 여름 석 달만 호스텔을 열며 이곳 숲에서 지내고, 나머지는 수도 탈린에서 생활했다. 그녀의 호스텔은 시설이나 위치도 좋은데다가 괜찮은 가격의 싱글룸이 있어 나 홀로 여행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다들 혼자 오는 손님이라 그녀는 호스텔 이름을 <Lonely Heart Hostel>로 바꿔야겠다며 웃었다. 전날 밤에는 운전을 하며 근처를 지나가다가 커다란 엘크와 나란히 달리는 바람에 무서워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에 내 가슴이 두근거렸다. 엘크 한번 보는 게 소원인 나에게 그런 기회가 왔다면 황홀한 시간이었을 텐데.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나는 아쉬움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날리자가 비니스투 아트 갤러리 입구에 우리를 내려줬다. 바다가 손끝에 닿을 듯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이 갤러리가 유명한 이유는 우선 갤러리 주인 얀 마니스키 때문이었다. 아무것도 없는 가난한 어촌 마을 비니스투에서 태어난 그는 가족과 함께 스웨덴으로 이주했다. 스웨덴에서 그가 찾은 직업은 그룹 아바의 매니저. 맘마미아의 모든 노래의 주인공, 그 아바 말이다. 비지니스 매니저로 탁월한 재능을 보인 그는 엄청난 돈을 모은 후 비니스투로 귀환했다. 쓸모를 잃고 무너져가는 바닷가 공장을 사들여 갤러리로 탈바꿈시켰다. 그리고 에스토니아 화가들의 패트론이 되어 그들의 그림으로 갤러리를 채웠다. 예술가의 후원자로 명성을 쌓은 그는 에스토니아 문화부 장관을 역임하고, 대통령 후보로 나서기도 했다. 에스토니안 모던 아트 컬렉션으로 손꼽히는 갤러리, 호텔과 레스토랑, 섬까지 소유한 이 남자는 지금 에스토니아 최고 갑부 중의 한 사람이다. 외진 어촌이었던 비니스투는 이 갤러리 덕분에 각지에서 사람들이 찾아오는 마을로 떴다. 갤러리는 기대 이상으로 근사했다. 공장이라는 역사적 유물의 흔적도 남기면서 바다의 전망과 자연광을 잘 살린 인테리어였다. 무엇보다 에스토니아 화가들의 흥미로운 작품이 꽤 다양했다. 조아나도, 나도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몰입했다. 돈 벌어서 이렇게 쓰는 건 참 괜찮구나, 싶었다. 갤러리에 딸린 카페에서 우리는 마지막 점심을 함께했다. 함께 보낸 지난 사흘이 서로에게 축복이었음을 고백하면서. 창 너머로 햇살을 받은 바다가 은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이곳에 하루 더 머물 조아나와 작별한 후 나는 비니스투를 떠났다. 탈린으로 돌아가기 전, 라헤마 국립공원 안의 늪지를 찾아갔다. 늪지 위로 길을 만들어 산책하듯 둘러볼 수 있었다. 한낮의 햇살이 따가워 늪의 신비한 분위기는 잘 살지 않았지만 상상할 수는 있었다. 눈에 덮이고 얼음이 언 겨울의 저녁도, 안개가 늪을 감싸는 가을의 아침도, 나무들마다 새순을 내기 시작한 봄의 오후도, 물을 마시러 온 엘크의 우아한 자태도. 보이지 않는 풍경을 상상하며 늪을 한 바퀴 돌았다. 라헤마에서 보낸 시간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장작을 한번 지펴놓으면 이틀은 따뜻하던 무쇠난로가 있던 숙소도, 완벽한 고요함 속에서 잠들고 깨어나던 백야의 밤도, 투명하고 쨍하던 공기도, 햇살에 반짝이던 자작나무의 은빛 몸피도, 물속에 잠긴 바위들이 신기하던 바다도, 눈에 보이진 않지만 어디선가 살아 움직이고 있을 엘크와 여우의 존재도, 다 좋았다. 모든 생명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그 숲에 잠시 몸을 의탁했던 사흘의 시간. 그 기억으로 또 한동안은 기꺼이 살아갈 수 있을 터였다. 그날 밤, 탈린에 도착한 내게 조아나의 메시지가 날아왔다. 좋은 하루를 보냈는지를 묻는 다정한 인사였다. 어디선가 달라이라마는 이렇게 말했다. 인류는 달나라에 갈 수 있게 되었지만 이웃을 만나기는 더 어려워졌다고. 한 번의 여행이 끝날 때 한 명의 친구가 남는다면 최고의 여행을 했다고 믿는 나에게 에스토니아는 그녀를 선물했다.

ⓒ(주)혜인식품-네네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