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 한 박스의 행복

밀양댁 엄마 손 밥상
글과 사진 이미라

감자 한 박스의 행복
감자 크로켓

감자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볶아 먹고, 쪄 먹고, 조려 먹고, 튀겨 먹고…. 어떻게 먹어도 맛있고, 언제 먹어도 맛있는 감자를 우리 가족은 특히 좋아한다. 그런데 지난봄, 감자 한 박스의 가격이 10만 원을 호가해 박스로 사기에는 엄두가 나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마트에서 주먹만 한 감자 다섯 개를 봉지에 담았다가 9,800원이라는 믿기 어려운 가격이 나와 다시 두 개를 살그머니 내려놓고 왔었다. 이상기온 탓이라고는 하지만 구황작물로서 사랑받아온 감자의 비싼 몸값은 장바구니를 든 아줌마에게 적잖은 충격이었다.
희한하게도 몇 달 새 감자 가격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마침 가을 감자가 제철이라 한 박스를 22,000원에 샀다. 봄에 못 먹었던 감자 요리를 맘껏 즐기리라 다짐하니 벌써부터 입안 가득 군침이 돌았다. 아들 녀석들이 어릴 적 간식으로 종종 먹었던 ‘감자 크로켓’을 만들어 달라고 하기에 추억도 되살릴 겸 함께 만들어보기로 했다.
특히 감자 크로켓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추억이 깃든 음식이다. 대학 기숙사 요리대회에서 1등을 하고 10kg 쌀 한 포대를 상품으로 받게 해준 기특한 음식이기 때문이다. 1993년 대학에 입학한 나는 난생처음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기숙사 생활을 시작했었다. 흔한 기숙사들과는 달리 아파트형 기숙사를 표방하며 24평 아파트에서 4명이 함께 생활하는 곳이었다. 대신 기숙사 식당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부엌에서 밥을 지어 먹어야 하는 형태였다. 누구 하나 살림에 익숙한 사람이 없는 가운데 유독 내가 밥 짓고 국 끓이는 때가 많았다. 어설픈 솜씨로 밥상을 차려서 친구들에게 먹이는 순간이 힘들다기보다는 재밌고 즐거웠던 것 같다. 가끔씩 4명의 방원들이 함께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어 먹으면서 나눈 정들이 그저 남남이었던 우리들을 식구가 되게 했다.

감자 크로켓을 만든 것은 기숙사 축제가 있던 날이었다. 각 방마다 음식을 한 가지씩 만들어서 포틀럭(potluck) 파티를 하는데 그중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음식을 뽑아서 상을 준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인터넷 검색창에 ‘포틀럭 파티 음식’이라고 치면 수백 가지 요리법이 검색되지만 그 당시는 핸드폰도 인터넷도 없는 시절이었다. 요리 초보 넷이서 폼 나면서 맛있고 간편한 음식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결정한 음식이 바로 ‘감자 크로켓’이었다. 특별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냥 감자를 삶아서 으깬 후 삶은 메추리알을 가운데 넣고 동그랗게 빚었다. 밀가루, 계란, 튀김가루 순서로 옷을 입혀 튀겨낸 후 반으로 잘라 토마토케첩을 살짝 뿌려 나름의 데코를 했었던 것 같다. 어설픈 솜씨로 크로켓을 만들면서 깔깔대던 웃음소리와, 1등으로 뽑혔을 때의 환호와, 쌀 포대를 들고 5층까지 낑낑대며 올라가던 기억이 생생하다. 요즘처럼 스마트폰이 있었으면 인증샷도 찍고 SNS에 기록도 남겼을 텐데, 지금은 그저 내 기억 속 사진으로만 저장돼 있는 추억이라 많이 아쉽다.
아이들이 어릴 적에는 다진 야채와 소고기를 볶아 감자 크로켓을 만들었다. 재료를 잘게 다져 넣으면 아이들이 먹기에 부담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영양적으로도 균형이 잘 맞는다. 하지만 나는 볶은 베이컨을 다져 넣는 것을 더 좋아한다. 바싹하게 볶은 베이컨의 기름을 제거하고 적당한 크기로 다져 넣으면 감자 특유의 담백함과 베이컨의 짭짜름한 맛이 잘 어우러진다. 이미 익힌 재료로 만들기 때문에 너무 오랫동안 튀길 필요도 없을 뿐만 아니라, 한 번 튀겨놓고 먹기 직전에 살짝 다시 튀겨서 먹으면 겉은 바싹하고 속은 촉촉한 감자 크로켓을 맛볼 수 있다. 함께 만들자고 하는 엄마의 말에 억지로 도와주는 척하더니 감자 껍질을 벗기고, 으깨고, 동글동글하게 모양을 빚던 아들의 얼굴에서 어린 시절의 귀여운 웃음이 스친다. 사춘기 특유의 시크함으로 무장한 녀석이 오랜만에 옆에서 얼쩡거리는 것이 나도 싫지 않다. 예전에는 아들이 도와주는 것이 성가시기만 했었다. 그런데 어느새 훌쩍 자라서 제법 거뜬하게 도우미 역할을 하는 녀석을 보면서 괜스레 뭉클하기까지 하다.

   

감자 크로켓이 아이들을 위한 간식이라면, ‘찐 감자’는 완벽한 새참거리다. 텃밭이며 마당이며 손 가는 일이 지천이라 시간이 날 때마다 남편과 나는 노동을 즐긴다. 분주하게 움직이다 보면 어느새 배가 출출해지는데 포슬포슬하게 삶은 감자에 설탕을 듬뿍 뿌려 먹으면 다시 기운이 재충전된다. 모기떼와 싸우며 정원을 가꾸는 이유가 쏟은 정성만큼 돌아오는 만족감 때문이긴 하지만, 일하다가 먹는 새참의 매력 또한 크다.
이사 온 첫 해라 휑뎅그렁하기만 했던 마당에도 어느새 잔디가 차오르고 나무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대중없이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심었는데도 척박한 땅에서 잘 견디고 자라준 식물들이 그저 고맙다. 사실 다른 집과 비교해보면 턱없이 키도 작고 약해 보이는 나무들이지만, 농약이나 인공적인 비료를 멀리하며 키운 것들이라 그 내면은 강단이 있고 튼튼할 거라고 믿는다. 그래서 그런지 우리 집에는 풀도 벌레들도 유독 많다. 며칠 딴청을 피우면 어느새 풀들이 텃밭을 점령하고 있고, 잔디는 자라서 마당이 뒤숭숭하다. 조그만 애벌레들이 잎사귀를 갉아먹는 속도가 어찌나 빠른지 시간이 날 때마다 애벌레를 잡아주지 않으면 풍성한 머리숱을 자랑하던 나무도 순식간에 대머리가 되고 만다. 마당의 연못도 봄과 여름을 보내는 동안 많이도 풍성해졌다. 어느새 단정(머리가 빨간색의 물고기)은 살이 올라 통통해졌고 새끼도 태어나서 어미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수초들도 풍성해져서 울창한 이파리들은 아기 물고기들이 새들을 피해 숨는 아지트가 되고 있다. 초록빛 수초들 사이로 고개를 빼꼼 내미는 빨강머리 단정들이 너무나 사랑스럽다. 이사 올 때는 작은 강아지였던 오구는 어느새 아가씨가 되어 늠름하게 집을 지켜주고 있다. 반려동물을 처음 키워보는 어설픈 주인의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오구는 끊임없이 꼬리를 흔들면서 사랑을 표현한다.

마당의 허브를 화분에 옮겨 심다가 잠시 새참시간을 가졌다. 아빠를 도와주던 큰 아들도 함께 앉아 찐 감자를 먹었다. 감자를 한 입 베어 물자 사각거리는 질감이 고스란히 느껴지면서 듬뿍 뿌린 설탕의 달콤함이 전해졌다. 그 달콤함 뒤로 담백한 감자 냄새가 확 올라왔다. 먹고 싶어서 낑낑거리는 오구에게 감자 한 조각을 먹이면서 아들이 말했다. “엄마, 저는 이사 와서 너무 좋아요.” 나도 얼른 대답했다. “엄마도 그래.” 남편도 따라 말했다.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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