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바다라는 세상 가장 큰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어요

마이 홀릭 라이프
인터뷰 장보영
사진 주민욱
장소 협조 The Jin

수중 사진작가 와이진(YZin)

바다를 좋아하는 친구들에게 익히 들어왔던 말이 있다. ‘세상은 바다를 알기 전과 후로 나뉜다. 그 어떤 미사여구나 장황한 수식 없이 바다의 치명적인 아름다움을 이토록 명료하게 설명해주는 문장이 더 있을까. 전 생애를 통틀어 세상을 뒤바꿔도 좋을 만한 어떤 기준이 나에게는 있을까. 그리고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 그것은 무엇일까. 그러한 기준을 가지고서 살아가는 삶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가.

지구의 70%가 바다잖아요. 아무리 부지런히 배낭여행을 다녀도 이 지구의 30%밖에 밟아보지 못해요.” 수중 사진작가 와이진 씨가 자신을 소개하면서 가볍게 들려준 이 말에 나는 그녀의 거의 모든 것이 들어 있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그녀가 넘나드는 세계의 크기였고, 그녀가 사진과 함께 걸어온 삶에 대한 자신감이었으며, 앞으로 펼쳐질 미래의 가능성이었다. 그것은 분명 바다를 잘 알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이었다.

20대 초반, 도심 속에서 화려한 연예인 스타일리스트로 맹렬히 질주해온 와이진 씨는 어떻게 사진을 찍게 됐고, 또 어떻게 방송 사진작가에서 수중 사진작가로 서서히 거듭나게 됐을까? 그녀의 인생에 바다는 어떻게 다가오게 됐으며, 이제 바다는 그녀의 인생에서 어떤 존재일까? 힘들고 고된 수중 촬영을 위해 평소 체력관리를 소홀하지 않는다는 그녀를 신설동의 한 헬스클럽과 인근 커피숍에서 만났다.

 

사진을 통해 바다와 세계를 오가는 디지털 노마드

안녕하세요, 작가님. 간단한 소개 부탁드려요.

수중 사진작가 와이진(Y․Zin)입니다. 개인 프로젝트와 여러 커머셜 촬영 외에 현재 영국 BBC의 한국 객원멤버로 다큐멘터리 제작을 하고 있구요. 이외에도 해외 방송국들과 다양한 촬영 협업을 하고 있어요. 한국의 공식 다이버 수중 사진작가로는 유일하다 보니 외국에서 한국의 바다나 해녀에 관해 보다 정확하고 구체적인 지식을 얻고자 조언이나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도 많아요.

 

해외에 체류하는 날도 많으시겠어요.

해외 일정도 많지만 아무래도 바다에 나가 있는 날들이 가장 많죠. 한국에 있는 날들이 얼마 없어요. 그래서 대부분 저를 찾는 메시지나 전화는 ‘한국이야?’로 시작해요. 그런데 한국에 있든 어디에 있든, 제가 작업을 하는 데 있어서 장소는 크게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굳이 한국에 있지 않아도 인터넷 같은 통신수단이 잘 발달돼 있어서 대부분의 일이 가능해요. 해외 어디에서든 일하면서 살아가는 ‘디지털 노마드’로 지내고 있습니다.

 

저의 경우 수중 촬영의 어려움을 올해 초 진모영 감독의 <올드 마린보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통감했어요. 당시 다큐멘터리 촬영 기간만 3년이 걸렸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수중 촬영, 굉장히 힘들고 어려워요. 수영장에서 수돗물 받아 찍으면 예산도 적게 들고 금방 찍어요. 그런데 리얼리티가 떨어지죠. 감독으로서 예술적으로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생기기 마련이구요. 리얼리티를 살리면서 바다 특유의 깊은 청량감을 찾으려면 결국 바다로 나가야 하는데, 나갔을 때부터는 인간의 힘으로 불가피한 경우들이 발생하죠. 그때부터는 바다가, 자연이 리드하는 것을 따를 수밖에 없어요. 저는 바다라는 가장 큰 스튜디오를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는데 제 스튜디오가 제 스튜디오가 아닌 거죠.(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에서 작업하면서 얻는 좋은 점이 있을 것 같아요.

클라이언트 요청으로 작업하는 경우랄까요. 수중 촬영의 경우 바다 및 기상, 시야 상태 등 자연의 힘이 사진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보니 스튜디오에서의 작업보다 제 의견을 클라이언트에게 수용시키는 면에서 좀 더 용이한 부분이 있어요. 클라이언트가 아무리 무리하게 요구한다고 해도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스튜디오 촬영의 경우 클라이언트의 의견을 전폭 집어넣어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고유한 전문 분야를 찾으신 거네요?

제가 방송계와 영화판에서 일할 때 대치동에 150평짜리 스튜디오가 있었거든요. 한 달 내내 열심히 일해서 번 돈이 월세 천만 원과 인건비로 나가면 끝이었죠. 내가 뭘 하고 있나 싶더라구요. 그런데 사진작가에게 그만한 스튜디오가 없으면 대한민국은 일을 안 줘요. 그게 참 혐오스러우면서도 제가 어떻게 해결할 수 없는 문제였죠.

 

연예인 스타일리스트로 일하다가 발견한 사진의 빛

30대가 되면서 본격적으로 수중 사진작가로 활동하기 시작했어요. 20대의 와이진은 어떤 사람이었나요? 그때도 바다와 가까운 사람이었나요?

전혀요. 완전한 도시 사람이었어요. 풀 메이크업에 굽 높은 하이힐 신고 손톱도 길게 기르고…. 가수 씨엘처럼요.(웃음) 20대 초반에는 연예인 스타일리스트로서 오래 일했어요. 대학에서 의상학을 전공해 적성에도 잘 맞았구요. 방송이나 패션 매거진 쪽에서 일이 끊이지 않고 들어와 정말 열정적으로 살았어요. 재미있었어요.

 

연예인 스타일리스트로 일하면서 사진은 어떻게 시작하신 건가요?

제가 워낙 장난기나 호기심도 많고, <세 친구>랑 <논스톱> 같은 시트콤 작업할 때라 주변에 유쾌한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는데요. 그래서 그런지 연예인 스타일 코디해준 뒤 증거 사진으로 찍어 관련 업체에 보내는 작업을 해야 할 때 어느 순간 파파라치 기질이 발동해서 몰래 찍기 시작했어요. 그게 더 자연스럽고 보기도 좋은 거예요. 스타일리스트로서 자부심이 있어서 고생해서 일하고 구걸하듯 증거사진을 찍는 게 싫었어요.(웃음)

 

 

애정을 갖고 일해온 연예인 스타일리스트는 어떻게 그만두게 됐나요?

제가 방송국에서 스타일 자료 사진을 남기기 위해 들고 다녔던 작은 카메라를 유명 사진작가 선생님께서 우연히 보신 게 제가 전업을 하게 된 계기였던 것 같아요. 어찌 보면 그 카메라 속의 사진들이 제 포트폴리오인 셈이잖아요. ‘감각 있으니 사진 한번 찍어보라’고 권유하시더라구요.

 

영화 포스터 및 매거진 화보 촬영을 오랫동안 해온 걸로 알고 있어요.

방송국과 영화판에 있으면서 다년간 드라마와 영화의 포스터, 광고와 매거진의 화보 작업을 해왔어요. 하지만 서서히 고민이 들기 시작했어요. ‘너도 나도 사진을 찍고, 사진작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사람들이 넘쳐나며, 사진으로 나올 건 다 나온 것 같은 이 세상에서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남들이 안 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는 것, 더불어 좋아하면 금상첨화인 것이 무엇이 있을까.’

 

‘내 것’에 대한 마음이 더 강하게 들었겠군요.

그렇게 슬럼프가 왔어요. 모든 활동을 접고 잠수를 탔죠.(웃음) 그러고서 방에 가만히 누워 있는데 CD들이 보이는 거예요. 고등학교 때부터 음악을 좋아해서 CD가 굉장히 많았거든요. ‘저걸 다 듣자, 저걸 다 듣고 나면 뭐가 조금은 보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CD를 하나씩 듣기 시작했어요. 그러다가 ‘너바나(Nirvana)’ 앨범 재킷 사진을 보게 된 거죠. 아기가 물속에서 지폐를 잡으려 손을 뻗는 모습이었는데, 너무 신비로웠어요.

 

바다와 그런 운명적인 만남이라니, 굉장히 드라마틱하네요.

‘이런 걸 찍고 싶다’는 마음이 가슴 깊은 곳에서 들더라구요. 어떻게 그 사진을 찍은 건지 너무 궁금했어요. 그래서 외국에 있는 친구들, 유학 가 있는 동창들에게 연락해 그 사진에 대해 수소문하기 시작했어요. 당시 한국에는 아무런 정보가 없었거든요. 당시만 해도 스킨스쿠버는 정말 부자들만 할 수 있는 숨은 스포츠였구요. 그렇게 기다리는데 친구들에게 하나둘씩 퍼즐조각처럼 소식이 왔어요. ‘그거 제나 할러웨이라는 사진작가가 찍은 거래’, ‘그거 하우징 카메라가 있어야 한대’, ‘영국에서 찍은 거래’ 등등.

 

 

재미있네요. 그러고서 어떻게 하셨어요?

일단 한국에서 스킨스쿠버를 배울 수 있는 곳을 찾아 수업 등록부터 했어요. 그러고서 바다로 나가 배우는 중에 재한 미군들이 수중 훈련하는 장면을 누군가가 하우징 카메라로 촬영하는 것을 발견했어요. 너무 반가운 마음에 다가가서 수중 촬영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봤더니 상당히 많은 것을 가르쳐주더라구요. 그러면서 알려준 것이 ‘내셔널지오그래픽 다이버 라이센스’였어요. 수중 촬영을 본격적으로 하고 싶은 사진작가로서 반드시 밟아야 할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내셔널지오그래픽 다이버 라이센스’ 과정을 수료하고 2008년에 대한민국 최초로 자격증을 땄죠. 이후 <내셔널지오그래픽>과 인연이 닿아 별도의 계약 후 협업 수중 사진작가로서 2017년까지 <내셔널지오그래픽 코리아 채널>에서 활동하기도 했어요.

 

10년차 수중 사진작가의 도전과 희망

놀라웠던 점은, 수중 사진을 찍는 작가님께서 심폐 기능이 선천적으로 약하다는 사실이었어요. 더불어 달팽이관도 예민하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남들보다 멀미를 더 쉽게 느낀다구요.

왼쪽 갈비뼈 안에 들어가 있어야 하는 심장이 저는 한가운데 있거든요. 그러다 보니 폐가 조금 작고, 폐가 성인 평균 사이즈보다 작다 보니 심폐 기능에 약간의 불완전함이 있는 건데요, 그런데 이건 차이일 뿐이고 아시아인으로서는 극히 드문 경우일 뿐 장애는 아니에요. 장애 판정을 받을 수도 없구요. 달팽이관도 마찬가지예요. 달팽이관이의 굵기가 평균에 비해 가늘어서 남들이 ‘좀 멀미가 나’ 할 때 저는 ‘대박 멀미가 나’라고 말하는 정도랄까요? 수술을 해서 인위적으로 치료하고 싶지는 않아 반은 처방받은 약으로, 반은 정신력으로 이겨내고 있어요.

 

그럼에도 수중 사진을 시작하신 건 놀라운 결단이었다고 생각해요.

위의 두 가지 진단들은 모두 고등학교 때 받은 거예요. 제 신체 상태를 알고 있는 상황에서 수중 사진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생긴 것은 저도 의아해요. 그런데 제가 수중 사진을 찍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는 이상하게도 아무 생각이 들지 않더라구요. ‘내셔널지오그래픽 다이버 라이센스’ 시험을 보고 나서 의사소견서를 받아오라는 요청을 받았을 때 불현듯 떠올랐어요. 수소문 끝에 다이버인 의사 선생님을 찾아가 심폐 기능 테스트를 받았고, 다행히도 다이버를 하는 데 있어 큰 지장이 없을 것 같다는 소견을 받을 수 있었죠.

 

하지만 바다에 나갈 때 항상 조심해야겠어요, 긴장도 되실 거 같구요.

물론이죠. 저는 아직도 여전히 바다가 무서워요. 자연은 언제든 바뀔 수 있고, 바뀌는 상황에 제가 아는 만큼 대처할 수 있는 건데, 아는 만큼 대처한다고 해도 제 체력이 일반인과 다른 것에 대한 리스크는 분명히 있을 테니까요. 저는 심폐소생술을 하면 갈비뼈가 심장을 관통할 수 있어요. 그렇다고 가슴에 ‘Don’t Push’라든지, ‘전기충격기만 사용’이라고 타투를 할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저는 항상 제가 어디를 가든지 자랑하듯이 주위 사람들에게 미리 말을 해요. ‘내 심장이 가운데 있는데 혹시 나에게 바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면 이렇게 대처해야 하니 그렇게 알고 있어~’라고. 그 방법이 저를 지키는 가장 안전한 방법인 것 같아요.

 

불편함조차도 함께 안고 가는 모습이 멋있네요.

제가 가지고 있는 선천적 약점이 오히려 다이빙을 할 때는 장점이 되기도 해요. 폐의 크기가 남들보다 작다 보니 바다 안에서 그만큼 공기를 덜 쓰고, 그만큼 더 오래 다이빙할 수 있거든요. 똑같은 공기를 들고 바다로 들어가도 성인 여자가 성인 남자보다 공기를 덜 쓰는데 저는 그것보다 덜 필요한 거죠. 엑스트라 공기가 있으니 함께 들어간 사람의 공기가 떨어졌을 때 도와줄 수 있구요. 어지간해서는 공기가 끊길 일이 없어요.(웃음)

 

작가님의 사진에 대해 말할 때 <해피 해녀 프로젝트> 이야기를 빠뜨릴 수 없죠. 처음 해녀를 봤을 때 느낌이 어땠나요?

엄청 황당했어요.(웃음) 선장님이 수백만 원의 첨단 장비를 갖춘 저는 오늘 바다가 거칠어서 다이빙을 못한다고 말씀하시는데 해녀분들은 태왁 하나 들고 웃으면서 거침없이 들어가는 거예요. ‘이게 뭐지?’ 싶더라구요. ‘왜 저는 (바다에) 못 들어가고 저분들은 들어가나요?’라고 항의를 하는데 선장님께서 태연하게 그러셨어요. ‘너는 다이버고 저분들은 해녀잖아.’

 

‘해녀의 사진을 남겨야겠다’는 마음은 어떻게 들었나요?

제주에서 해녀를 처음 봤을 때 <심청전>이 떠올랐어요. 가족을 위해 바다에 몸을 던지는 심청이의 모습과 해녀의 모습이 겹쳤거든요. 그렇다고 지금의 해녀가 오래된 백과사전 속 모습은 아니었어요. 원초적이고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졌죠. 그런데 현대의 해녀를, 서서히 사라져가는 해녀를 기록하는 사람이 없는 거예요. ‘그렇다면 나는 디지털 시대의 수중 사진작가로서 지금의 해녀를 선명하고 리얼하고 아주 멋있게 찍어두자’라고 마음먹었죠. 사라져가는 해녀가 행복하고 당당한 여인상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에서요.

 

해녀 사진을 찍으면서 있었던 일들 중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있다면 공유해주세요.

매 순간 잊지 못해요. 정말 엄청난 일들이 생각나는데요, 사람들은 찰나에 촬영한 해녀의 모습을 우아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실제 촬영현장에서는 마치 수십 마리의 물개가 한꺼번에 바다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면 돼요. 정말 분주하고 정신없죠. 어디로 가실지도 모르겠고, 따라가자니 제 장비들은 너무 무겁고. 물속의 해녀분들은 너무 빨라서 따라갈 수가 없어요. 94세 할머니를 제가 못 쫒아가요.(웃음)

 

보통 수중 사진작가들은 바닷 속 희귀한 물고기들을 많이 찍잖아요.

수중 사진을 시작하고 얼마 안 돼서 일본에 유명한 다이빙 포인트가 있다고 하여 초대받아 갔는데 정말 충격적인 장면을 목격했죠. 쌀알만 한 핑크색 희귀 물고기 한 마리를 촬영하려고 다이버들과 수중 사진작가들이 바닷 속에서 줄을 서고 있더라구요. 자기 차례가 돌아오면 플래시 팡팡 터트려 찍고 돌아가고, 그다음 사람이 찍고 돌아가고….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저는 그렇게 찍고 싶지 않았어요.

 

우리가 익히 보아온 바닷 속 생명체의 사진들이 그런 과정을 거쳐 찍히는 줄은 몰랐어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런 물고기들은 이미 강렬한 플래시에 실명해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하네요. 누구를 위한 걸까, 무엇을 위한 걸까 싶었어요. 인간의 만족? 사진작가가 바닷 속 아름다움을 세상에 전달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걸 텐데, 그런 정보 전달을 위해서라면 한 사람만 찍고 돌려보면 되잖아요. 그 순간 저는 마크로 촬영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했어요. 와이드 앵글로 이 바다를 산책하듯 찍어야겠다고, 풍경만 가져가겠다고.

 

애니메이션 스토리를 성인 버전으로 재해석해 바닷 속에서 촬영하고 계신데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그럼 나는 뭘 찍지?’라는 문제에 다시 봉착했죠. 굳이 저는 물고기를 찾아 전 세계를 돌아다닐 생각은 없었거든요. 이미 너무 많은 사진작가들이 찍어왔으니까요. 그때 (테크니컬 다이빙 강사인) 저희 신랑이 저에게 ‘네가 제일 좋아하고 잘하는 걸 하라’고 말하더라구요. 제가 좋아하는 거라면 영화, 드라마, 바로 스토리!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그대로 재현하면 재미없으니까 어떤 메시지를 넣어 몽환적인 바다 세상에서 저만의 성인 버전으로 제작해보기로 했죠. 수중 전문 모델도 없고 비용도 많이 들어 힘들었지만 그래도 시도했어요.

 

 

2015년 세계 최초 ‘사이드마운트’ 부문 수심 101미터 다이빙에도 성공하셨죠.

보통 대다수의 다이버들이 이용하는 ‘백마운트’와 달리, ‘사이드마운트(Side Mount)’는 공기탱크를 양 옆에 착용해 좁은 지역의 특수 다이빙에 유리한 장비 시스템인데요, 이 시스템으로 100미터 수심에 가기 위해서는 각 탱크별로 호흡기와 기체를 달리한 ‘트라이믹스’ 기술을 사용해야 합니다. 각기 다른 기체들을 수중에서 적제적소 골고루 사용해야 해서 어렵죠. 잘못하면 산소 중독, 환각 등 위험한 상황을 초래할 수도 있거든요. 그 ‘사이드마운트’ 시스템으로 100미터 다이빙에 도전해 세계 최초의 아시아 여성 다이버로서 성공했던 거예요.

 

두려움과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100미터 존을 찾는 것부터가 곤혹이었어요. 어렵게 찾은 곳이 필리핀 앞 바다였는데요. 다이빙도 고산에 올라가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압차가 있어서 처음부터 100미터 존으로 바로 내려갈 수가 없어요. 조금씩, 조금씩, 오늘 50미터 내려갔으면 다시 육지로 올라와 내일 60미터, 그다음 날 70미터…. 이런 식으로 서서히 내려가야 안전하죠. 조류 때문에 엉뚱한 지역으로 잘못 착지한 적도 있었구요. 그래도 제 신랑이 제 긴급 탱크까지 메고 저를 촬영하면서 101미터까지 함께 내려갔어요.

 

다이버로서의 정체성 혹은 수중 사진작가로서의 정체성, 어느 쪽에 더 가까우신가요?

최근까지 했던 고민인데요. 그래서 실험을 한번 해봤어요. 카메라 없이 다이빙을 가보고, 다이빙하지 않고 카메라만 들고 여행을 해봤죠. 그랬을 때 내가 언제 더 행복한지 알고 싶어서요. 솔직하게 들여다봤어요. 그런데 저는 카메라가 없으면 다이빙을 안 하게 되더라구요. 시야가 좋지 않아도 다이빙이 좋은 분들은 그냥 바다에 들어가시거든요. ‘내가 하고자 하는 작업 때문에 다이빙을 하는 거지, 다이빙이 좋아 수중 사진을 찍는 게 아니구나’라는 걸 그때 분명히 알았어요. 물에 대한 두려움이 있지만 수중 사진에 대한 호기심과 욕심이 더 강하니까 계속 바다에 들어갈 수 있는 것 같아요.

 

다음 생에는 물로 태어나고 싶어요

거친 바다에서 작업을 해야 하다 보니 체력관리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할 것 같아요.

맞아요. 액티브한 일인 만큼 전문 퍼스널 트레이닝을 받고 있고 식단관리도 하고 있어요. 하루 평균 4시간 정도 아주 빡세게요. 시간이 없다고 운동하는 걸 계속 미뤄왔는데 어느 순간 체력도 실력이란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리고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명상을 하고 있어요. 체력도 실력이지만 그 이상 중요한 것이 정신력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정신력이 강하면 체력이 좋지 않아도 끌어내는 힘이 있어요. 제가 하는 일의 경우 인명사고도 특히 많잖아요. 물을 이기려 하지 않고 물과 함께 흐르듯 작업하려면 그 무엇보다 명상이 중요하다고 봐요.

 

작가님께서 느끼는 바닷 속 세상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바닷 속 세상의 매력은 단 1초도 같지 않다는 것 같아요. 그런 바다의 모습이 항상 저를 긴장하게 하고 기대하게 하고 설레게 해요.

 

후배 양성 차원에서 현재 특별한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들었어요.

한국의 대학생들과 바다도 보호하고 상어도 보존하는 목적으로 <상어 보존을 위한 다큐멘터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사실 우리에게 알려진 것과 달리 상어는 공격동물이 아니에요, 방어동물이지. 영화 <죠스>를 만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상어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만든 것에 대한 반성(?)의 차원으로 상어 보호활동을 하고 계세요. 저도 그분들과 함께 <Save My Fins>라는 단체에서 상어 보존 활동을 하고 있구요.

 

최근 바다 오염의 심각성을 알리는 사진이나 영상들이 사람들 사이에서 활발하게 공유되며 변화의 움직임이 확산되고 있는데요.

산호가 죽어 있거나 플라스틱이 있다면 저 또한 틈틈이 찍어두고 있어요. 10년 전에 갔던 바다와 1년 전에 갔던 바다가 다르잖아요. 매년 4월이면 싱가포르에서 전 세계 다이버들이 모이는 <ADEX(아덱스)>라는 행사가 열리는데 제가 올해 엠버서더거든요. 내년 4월 주제가 <플라스틱 바다>예요. 그래서 제 사진들을 강연장에서 발표할 것 같아요.

 

향후 계획에 대해 들려주세요.

제 마지막 목표는 남극에 가는 거예요. 남극에서 <겨울왕국> 같은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찍는 거요. BBC 멤버로 남극 탐험대에 함께 들어가는 것도 제 목표 안에 있어요. 가까운 계획으로는 곧 가을학기 수중사진학교 아카데미를 시작하구요. 9월에는 중국 초대로 베이징에서 바다 상어 보호에 대한 발표가 있어요. 10월에는 시즌이라 해녀 사진을 찍으러 제주에 갈 것 같구요. 마침 ‘윌리엄 탄’이라는 싱가포르 출신의 세계적인 마크로 수중 사진작가가 제주에 올 것 같아요. 자연광 상태로 물고기들을 우주의 생물체처럼 아주 잘 찍는 친구로 유명하죠. 제주에도 아름다운 마크로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제가 초대했어요. 찬바람이 부는 11~12월이면 멕시코에서 상어 프로젝트를 진행하구요.

 

수중 사진을 찍어오면서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점이 있었다면 알려주세요.

아무래도 애정을 가지고 해녀 사진을 찍어오다 보니 그분들의 문제에 꾸준히 관심이 가는 것 같은데요. 요즘 같이 해경들이 첨단 GPS 장비를 들고 바다를 누비는 시대에 해녀들이 바다에 나가 실종사고가 나고, 죽어 돌아온다는 게 저는 이해가 안 가요. 많지도 않은 해녀를, 있는 해녀라도 보호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 이유로 <디어 오션>이라는 비영리 단체를 만들어 ‘해녀들의 GPS 모금 작업’을 하고 있어요. 아직 모금액도 적고, 알려져 있지 않은 만큼 <해피투데이> 독자분들도 관심 가져주시면 좋겠습니다.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난다면?

다시 태어나도 사진작가였으면 좋겠어요. 물로 태어나도 좋을 거 같아요. 바다로 태어나도 좋을 거 같아.

 

와이진

국내 최초이자 유일의 여성 다이버 수중 사진작가. 바닷 속 아름다움을 사진으로 포착해 세상에 알리는 일을 10년 넘게 해오고 있다. 지난해에는 2012년부터 6년 동안 제주 해녀를 촬영해 담은 사진집 <HAENYEO>(해녀)를 발간했다. 현재 세계 여러 나라의 다이브 엑스포에서 세미나를 통해 한국의 바다와 해녀를 알리고 있다. yzink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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