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낙의 바지런함으로 만들어내는 건강한 시골밥상

이미라의 밀양댁 엄마 손 밥상
글과 사진 이미라

아낙의 바지런함으로 만들어내는 건강한 시골밥상
호박잎 쌈밥

촌으로 이사온 지 열 달이 됐다. 남편의 집요한 설득에 16년간의 아파트 생활을 끝내고 시작한 전원생활이지만 사실 시골에서 자란 나에게 이곳은 익숙한 환경이다. 유년시절, 항상 아파트를 동경했기에 결혼 후 난생처음 아파트에 살게 됐을 때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반대로 평생 아파트에서만 살았던 남편에게 전원생활은 포기할 수 없는 꿈이었고, 결국 내가 아파트 생활을 포기하고야 말았다.

누가 서점주인 아니랄까 봐 책으로 농사법을 익힌 남편은 텃밭의 모든 일은 자신이 한다며 나에게는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말라고 큰소리쳤다. 그런데 농사가 어디 글로 익힐 수 있는 기술인가. 다양한 최고급 농기구들을 널어놓고 이리저리 텃밭을 왔다 갔다 하는 남편을 보면서 성질 급한 나는 호미 하나로 후다닥 밭일을 했다. 어릴 적 텃밭 농사짓는 엄마의 어깨너머로 상추 모종 심고 고추 지지대 세우는 것쯤은 익히 보아왔다. 그래서인지 농사일이 처음이 아닌 것처럼 익숙했고, 꼼꼼하게 천천히 일하는 남편 옆에서 잔소리를 해대며 텃밭을 함께 누비고 다닌다.

일손이 빠르지는 않지만 남편은 고집스럽고 인내심이 강한 사람이다. 귀찮을 만도 한데 매일 새벽 텃밭으로 달려 나간다. 그런데 ‘자연이 주는 대로 먹는다’는 철학으로 키우는 채소들은 어찌나 더디게 자라는지, 주변 풀이 자라는 속도의 절반도 따라가지 못한다. 풀을 뽑고 뽑아도 상추는 항상 풀보다 키가 작고, 그 잎사귀에는 구멍이 송송 나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다림 끝에 수확하는 작물들은 향도 진하고 튼튼하다. 모든 채소가 씹을 때 각자 다른 식감이 느껴진다는 사실을 시시각각 깨닫게 된다. 화학 비료 성분 없이 오로지 태양, 물, 땅의 힘으로만 자란 작물들은 죽지 않고 견디기 위해서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었나 보다. 텃밭을 가꾸기 전에는 보드랍고 야들야들한 잎이 맛있다고 여겼었는데, 손수 직접 키운 텃밭 채소를 한 잎 한 잎 씹으면서 건강한 기운이 몸속으로 스며드는 느낌을 받는다.

척박한 환경을 잘 견디고 있는 녀석들은 호박, 토마토 그리고 고추다. 특히 토마토와 고추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 매일 수확 가능한 작물이 있기에 텃밭을 드나드는 즐거움을 주는 녀석들이다. 또 호박은 어디 하나 버릴 게 없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물이다. 이사 후 텃밭을 만들 때 엄마가 “호박은 똥구덩이에 심어야 한다. 밑에 거름을 잔뜩 넣고 심어야 쑥쑥 큰다”라고 조언하셨건만 남편은 똥구덩이는커녕 거름 하나 없는 맨땅에 씨앗을 심었다. 한데 유독 발아가 잘 되고 쑥쑥 자라기에 남편을 향해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었는데, 알고 보니 호박 심은 자리 옆에 강아지 오구의 똥을 모아 묻어둔 흙무덤이 있었다. 의도하지 않은 거름 덕분인지 호박 넝쿨은 주위로 잘 번져 나가서 일주일에 한두 개씩 우리에게 호박을 선물한다. 그뿐만 아니라 넘쳐나는 호박잎 중에서 보드라운 것들을 골라 찌면 입맛 없을 때 밥 한 공기는 거뜬히 먹을 수 있는 맛있는 반찬이 탄생한다.

호박잎은 따서 바로 먹어야 맛있다. 냉장고에 보관해두었다가 먹으면 잎에 검은 반점이 생기고 질겨진다. 호박잎을 딸 때도 연녹색을 띠며 줄기가 질기지 않은 연한 잎으로 잘 골라야 한다. 잔털이 보송보송 나 있는 호박잎은 줄기 부분부터 섬유소질을 잘 벗겨내고 다듬는다. 물에 헹굴 때도 호박잎 두 장을 들고 거친 부분을 맞대어 살살 부비며 씻으면 쪘을 때 훨씬 부드럽다. 또 호박잎은 살짝 쪄야 하는데 그때 물기가 너무 많으면 축 늘어지고 식감이 좋지 않다. 호박잎을 잘 헹군 다음, 물기를 잘 털어내고 켜켜이 쌓아서 김 오른 찜통에 찌는데, 덜 찌면 잎이 거칠고, 과하면 물러서 찢어지므로 적당한 시간에 꺼내 식히는 것이 중요하다.

호박잎 쌈을 먹을 때 쌈장에 찍어 먹어도 되지만, 뚝배기에 강된장을 끓여서 함께하면 금상첨화다. 강된장은 물기가 없는 빡빡한 된장으로, 모든 쌈과 잘 어울리고 그냥 밥에 스윽 비벼 먹기만 해도 맛있는 밥도둑이다. 호박잎에 밥을 올리고 된장 듬뿍 발라서 볼때기가 미어지도록 한입에 먹는 맛이 최고지만 우리 집 남자들은 쌈을 싸는 행위를 너무 귀찮아한다. 돌아가며 쌈을 입어 넣어주는 데도 한계가 있는지라 미리 호박잎 쌈을 싸서 접시 가득 쌓아둔다. 깨소금 살짝 뿌린 밥을 한입 크기로 호박잎에 돌돌 말아두면 남편과 아들이 강된장에 콕콕 찍어가면서 맛있게 먹는다. ‘음식은 정성’이라는 말은 허투루 생긴 말이 아니다.

시골밥상에서 가장 눈여겨볼 점은 아낙네의 바지런함으로 탄생하는 반찬이 많다는 것이다. 길가에 지천인 명아주 여린 잎은 나물이 되고, 노란 꽃이 앙증맞은 민들레도 쌉싸래한 김치가 되어 밥상에 올라온다. 무심코 지나치는 풀이며 나무들이 식재료가 되는 마법은 요즘 주변에서 찾아보기 힘들다. 그래서인지 시골생활을 하면서 유독 엄마의 반찬이 자주 생각이 난다. 엄마 따라 호박잎 쌈을 만들다가 함께 따온 고추로 고추전을 만들었다. 고추를 반으로 가르고 밀가루 반죽을 입혀 프라이팬에 그냥 지지면 되는 간단한 요리다. 노릇노릇 지져서 양념장에 콕 찍어 먹으면 바삭하고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특별할 것 없는 고추전이 맛있는 이유는 싱싱한 고추를 사용해서 그 자체의 맛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재료로 최고의 맛을 찾아내는 것이 가장 훌륭한 요리법이라는 진리를 우리는 자주 망각하고 산다.

경상도에서 흔한 콩잎 장아찌를 보고 서울에서 온 친구가 ‘나뭇잎을 왜 먹느냐’며 이상하게 여겼던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면 누렇게 삭힌 콩잎이 영락없이 낙엽 같다. 하지만 삭힌 콩잎을 한 잎 한 잎 정성스럽게 양념을 발라가며 만든 콩잎 장아찌를 먹어본 후 친구는 콩잎 마니아가 됐다. ‘그 나뭇잎 반찬 좀 구할 수 없을까?’라며 전화가 올 지경이다. 콩잎을 따다가 삭혀서 먹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호박잎을 직접 따다가 쪄서 먹는 사람은 또 얼마나 될까? 나 또한 엄마의 솜씨를 보고 자라지 않았으면 콩잎이, 호박잎이 얼마나 맛있는지도 모르고 무심코 지나치며 살았을 거다. 내가 차려준 밥상 앞에서 ‘엄마, 이거 우리 집 호박잎이에요?’, ‘엄마, 이거 우리 집 고추로 만든 고추전이에요?’라고 물어주는 아들 녀석들이 기특하고 고맙다. 가끔은 맛을 보다가 ‘엄마, 이건 외할머니 된장이죠?’라며 알아채는 녀석들이 신기하다. 아직은 내가 엄마를 따라가려면 멀었다는 사실에 머쓱하면서도 배를 채우기만 하는 음식이 아니라 할머니와 엄마를 떠올리는 밥상이라는 사실이 흐뭇해진다.

솥뚜껑에 기름을 두르고 숟가락으로 꼭꼭 눌러가며 부추전을 부쳐주시던 외할머니의 모습은 부추전을 먹을 때마다 떠오른다. 아빠가 투망으로 잡아온 피라미로 어탕국수를 만들던 엄마가 숭덩숭덩 호박과 부추를 썰어 넣는 모습도 한 장의 사진처럼 선명하다. 음식과 함께 떠오르는 추억들은 정겨움이 깊어서, 먼 훗날 나의 아이들도 엄마를 떠올리는 음식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오늘도 밥상을 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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