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땅을 잇는 산줄기의 발견

임원경제 산책
글 정명현

온 땅을 잇는 산줄기의 발견

상택지(1)

 

70%. 이 비율은 어린 시절부터 내 몸속 깊이 각인됐다. 두 가지로다. 하나는 우리나라 산의 비율이고, 다른 하나는 인체의 수분 비율이다. 나는 우리 산천을 돌아다닐 때마다 70이라는 숫자를 자연스럽게 되새겼다. 비교적 산이 적었던 광주와 전라남도 지역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만, 산이 많은 곳을 지날 때, 특히 중고 시절 수학여행 때 가보았던 지리산이나 설악산을 갔을 때 더욱 그랬다. 그런 교육의 영향 때문이었는지, 야트막한 야산을 지나칠 때도 ‘우리나라 산 참 많다’는 생각을 재확인하곤 했다.

 

성인이 돼 강원도와 같은 산간 지역에 놀러갈 기회가 좀 더 생기면서, 이런 인식은 확신으로 점점 변해갔다. 하지만 이런 나의 인식은 반쪽짜리에 불과했다. 남한 지역, 그것도 극히 일부 지역에서의 경험이기 때문이다. 남한보다 산의 넓이나 규모에서 비교가 안 될 북한 지역은 아예 알지도 못한다.

 

우리나라 땅에 대해 이 정도의 인식에 머물고 있던 차에 <상택지(相宅志)>를 번역하면서 기이한 경험을 했다. <상택지>는 <임원경제지>의 15번째 지(志)로 편제된 풍수 백과사전이다. 상택(相宅)은 살 곳(宅)을 살핀다(相)는 뜻으로, 사람이 살기 좋은 곳을 찾는 방법을 기록한 것이다. 풍수라 하니, 묏자리를 연상할 독자도 있겠으나, 여기서 말하는 풍수는 죽은 사람의 터를 잡는 일과는 전혀 무관하다.

 

<상택지>에는 전국의 지리상 특성이 정리돼 있다. 그중에 팔도를 경기도부터 시작해서 차례대로 총평하는 내용도 있다. 내가 기이한 경험을 한 곳은 바로 팔도 총론의 첫 번째인 경기도의 지리를 설명하는 다음과 같은 첫대목으로, 이중환(李重煥, 1690~1752)이 1751년에 저술한 <택리지(擇里志)>를 요약한 부분이다.

 

죽산(竹山)의 칠장산(七長山: 안성시 삼죽면, 죽산면, 금광면의 경계)은 경기도와 충청도의 경계에 우뚝 솟아 있다. 이 산줄기는 서북쪽으로 뻗어 나가다가 수유고개(水踰峴: 용인시 처인구 남동)에서 크게 끊어져 평지가 되고, 다시 솟아나서 용인(龍仁)의 부아산(負兒山: 용인시 처인구 삼가동, 기흥구 지곡동의 경계)이 되고, 석성산(石城山: 지금의 보개산으로 용인시 기흥구 동백동, 처인구 포곡읍 가실리의 경계)이 되고, 광교산(光敎山: 수원시 장안구, 용인시 수지구의 경계)이 된다. 광교산으로부터 산줄기가 서북쪽으로 뻗어 관악산(冠岳山: 서울시 관악구, 과천시의 경계)이 되고, 서쪽으로 바로 뻗어서는 수리산(修理山: 안양시, 군포시, 안산시의 경계)이 된다.

 

칠장산(<대동여지도>에는 ‘칠현산’으로 표기)에서 시작해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새로운 산 이름이 반복되는 문장이다. 관악산과 수리산 외에 내게는 생소한 산들만 나열돼서 그랬는지, 글만 보아서는 평범했다. 너무 평범해서 지겨워질 것 같은 문장이었다. 아무런 감흥도 일어나지 않았다. 경기도의 살 만한 곳을 이야기하면서 왜 산들만 줄곧 나열하고 있는가. 이 산이 저 산이 되고, 저 산이 요 산이 됐다는 게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것인가.

 

<임원경제지>를 번역하고 있는 번역자에게 의미 없는 문장이면, 일반 독자에게는 더 의미 없는 글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에 미치다 보니, 이 문장을 그냥 넘겨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각 자료를 통해 우선 나부터 이해하고, 내 자신을 설득해야 했다. 곧장 <대동여지도>를 들췄다. 그리고 원문에 나온 지명을 하나하나 찾기 시작했다. 확인이 되는 지명도 있고, 그렇지 않은 지명도 있었다. 그렇지 않은 지명 중에는 이름이 달리 기재된 곳도 있었다.

 

이 몇 개의 지명을 찾는 데 한참이 걸렸다. 하지만 <대동여지도>에서 지명을 하나씩 확인해가면서 묘한 희열과 감탄이 저절로 쏟아졌다. 우선 글로만 된 서술이 그림에서 그대로 확인됐다는 점에서다. 100년 전(1751년)에 쓴 글이 110년 뒤(1861년)에 제작된 지도에 그대로 묘사됐다. 둘째로 조선인들이 인식하는 강토에 대한 태도 때문이었다. 경기도 전체가 산줄기로 연결돼 있다고 서술했고, 그림에서도 꼭 그렇게 그렸다.

 

특히 경기도의 산줄기가 모두 연결돼 있다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나로서는 우리 국토에 대한 인식의 큰 전환이 됐다. 기껏해야 한강 이북은 광주산맥으로 연결됐고, 한강 이남은 차령산맥의 줄기가 있다고 여겼을 뿐이었다. 물론 초등학교 시절부터 태백산맥이니, 노령산맥이니 하는 산맥이 여러 개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산맥들은 백두산부터 이어지지 않았고 군데군데 단절이 있었다. 그리고 산맥의 영역을 두꺼운 선으로 표시를 해놓았기 때문에 실제로 이어진 복잡한 산줄기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예전부터 이런 식의 산맥의 개념이 수정돼야 한다는 주장을 듣기는 했지만, 내게 절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의 경험으로 한국의 산과 산줄기에 대한 이해를 재정비해야 함을 절감했다. 이미 우리 선조들은 산이 백두에서 시작해 전 국토에 신경줄기나 혈관처럼 긴밀히 연결됐다고 믿고 있었는데, 우리는 사회교과를 배우면서 그런 식의 사고를 하지 않은 것이다.

교과서에 나오는 ‘산맥지도’는 산맥이 단절됐다고 은연중에 보여주었다. 이 산맥지도는 일본 지질학자인 동경제국대학의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 1856~1935)가 1903년에 주장한 이론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는 사실도 새롭게 알았다. 이 이론이 우리 지질학계, 지리학계는 물론 우리 교육 현장에 100년 동안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경기도를 소개하면서 왜 하필 중요해 보이지도 않고, 그다지 높지도 않은 죽산의 칠장산(해발 492m)을 처음으로 언급했을까. 이 산이 경기 남부 및 충청도와 경계가 되는 산줄기 중 중심이 되는 산이기 때문이다. 칠장산의 동북쪽에서는 백두대간의 한남금북(漢南錦北) 정맥이 뻗어오고, 동남쪽으로는 금북(錦北) 정맥이, 북쪽으로는 한남(漢南) 정맥이 갈라지는 분기점이다. <대동여지도>의 그림상으로는 ‘장항령(獐項岺)’이라 표기된 곳이다. 칠장산 정상 근처에는 이 세 정맥이 갈라지는 3정맥 분기점이 있다.

 

여기서 말하는 정맥(正脈)은 영조 때 신경준(申景濬, 1712~1781)이 저술한 <산경표(山經表)>라는 책에서 산줄기를 1개의 대간(大幹)과 1개의 정간(正幹) 그리고 13개의 정맥으로 나눈 분류 중 하나다. 대간이 가장 크고, 정간이 그 다음이며, 정맥이 가장 작다.

 

칠장산이 충청도와의 경계가 되면서도 중심이 되는 산이라고 보는 이유는, 칠장산을 중심으로 경기 남부, 즉 경기도의 한강 남쪽 지역이 모두 이 산에서 뻗어나갔기 때문이다. 위에서 인용한 <상택지>에서의 설명은 바로 이를 말해준 것이다. 칠장산이 북쪽으로 뻗어가면서 왼쪽으로는 용인, 수원 등이 있고, 오른쪽으로는 여주, 이천, 광주 등이 있다. 칠장산이 서남쪽으로 뻗어 형성된 구봉산(469m) 줄기의 북쪽으로는 평택, 안성이 있다. 다시 서북쪽으로 뻗어가서 수리산(489m)과 관악산(632m)으로 이어진다.

 

이제까지 나에게는 산은 그냥 개별적인 산이었다. 북한산, 지리산, 설악산…. 산을 각 개체의 산으로만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상택지>와 <대동여지도>에서 보여준 산은 각각 독자적으로 떨어져 있는 개별적인 산이 아니었다. 칠장산에서 수리산, 관악산까지 모두 한 구간도 줄기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온 하나의 맥(脈)이었다. 따로 떨어져 있을 때는 별 의미 없던 산들이 이런 맥락으로 내게 들어오면서 친근하고 사랑스럽게 다가와 내 동네의 산이 됐다.

 

경기도는 서울을 둘러싸고 지금의 영역과 거의 비슷하게 걸쳐 있다. 경기라는 말 자체가 왕성이 있던 서울(京)과, 이를 둘러싼 외곽 지역의 행정구역(畿)을 가리킨다. 그러니 당연히 한양 주변의 지역이 경기도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경기도의 산줄기는 한강을 중심으로 남과 북이 크게 갈린다. 한강 남쪽의 산들은 칠장산에서 출발해 한강과 서해를 만나면서 끊긴다.

 

한강 북쪽의 산들은 철령에서 이어져 왔다. <택리지>의 설명이 아무리 산줄기 중심으로 그 지역을 설명하더라도, 실제로 확인하지 않는 이상 이를 입체적으로 조망하기는 어렵다. <택리지>(1751년)와 <상택지>와 <대동여지도>(1861년)의 결합을 통해 우리나라의 산과 들과 강이 긴밀하게 연결된 전체로 파악하게 됐다. 문자기록과 그림기록의 만남을 통해 가능했던 것이다.

 

요새 사람들은 산줄기나 산의 의미를 실감하지 못한다. 막혀 있으면 구불구불 산기슭을 타고 굽은 길을 내서 고개로 넘어가거나, 낮은 곳을 절개하거나 아예 터널을 뚫어버리기 때문에, 등산을 하지 않는 이상 산에 의지할 일이 거의 없어진 것이다. 한계령(1,004m)도 넘어가고, 대관령(832m), 미시령(826m)도 뚫렸다. 얼마 전에는 인제양양터널(길이 10.96km)이 뚫렸다. 비행기는 더 말해 무엇하랴. 더 이상 산이 신비롭지도 않고 두려운 곳도 아니다.

 

70%. 우리나라 산의 비율이자, 인체의 수분 비율이기도 하다. 우리 산은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육지 전체가 이어져 있었다. 당연히 산의 형세나 위치는 내 삶과 직결됐다. 이제는 산이 내 삶과 무관해졌다. 하지만 자연을 두 다리로 걷지 않고 건강하게 살 도리는 없다. 아직도 <대동여지도> 식의 국토 인식은 유효하다. 그 체제를 존중하지 않고 아끼는 마음이 없이는 우리의 미래도 건강하지 못하다. 우리는 산에 기대어 살아왔고 물과 접해서 살아왔다. 하지만 아무리 부정해도 우리 산은 우리 몸의 물과 같은 존재다. 없어도, 수질이 좋지 않아도, 아무 문제없다는 듯이 소홀히 하다가, 하루만 섭취하지 못해도 몸의 균형에 큰 탈이 나게 하는. 수질이 악화되는 과정과 함께 우리 산도 그동안 여러 방식으로 훼손됐다. <상택지>와 <대동여지도>를 조망하는 과정에서 보니 그 훼손의 피해가 결국 우리 자손들에게 부메랑이 될까 더욱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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