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고픈 자들의 허기를 위한 흔하지 않은 한 끼

김하늘의 맛동산

글과 사진 김하늘

배고픈 자들의 허기를 위한

흔하지 않은 한 끼

문래동 <소문난 식당> 묵은지 고등어조림

 

풍경의 색은 짙어져가고, 모호했던 계절의 경계는 점점 뚜렷해진다. 이맘때면 엄마는 늘 햇양파를 곁들인 부추 무침을 상에 번번이 올렸다. 씹을 때마다 새롭고 몇 번을 먹어도 질리지 않았다. 땅에서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세상 물정 모르고 단맛과 향긋한 풋내를 뿜는 양파, 녹음만큼 짙어진 맵싸함이 호쾌한 부추 그리고 조선간장, 고춧가루, 참기름, 깨소금이 곁들어진 그 여름의 반찬은 천하무적의 맛이었다. 응용력을 발휘해 부추 무침을 잘게 잘라 보리밥 위에 얹고, 끓인 된장을 넣어 쓱쓱 비벼 먹으면 무엇이든 정면 돌파할 수 있을 것 같은 힘이 솟곤 했다.

여름만 되면 조르던 엄마의 음식이 귀해졌다. 가세가 기울면서, 엄마는 집에서 2시간 떨어진 작은 시골 동네로 식당 일을 하러 나갔기 때문이다. 한 달에 하루 이틀씩 식구들을 챙기기 위해 본가와 식당을 오갔다. 몇 달 만에 만난 엄마의 손목에는 붕대가 감겨 있었고, 왼쪽 검지에는 몇 겹의 골무가 끼워져 있었다. 그녀의 허름한 행색을 보자마자 품에 안았다. 내 가슴에 그녀의 작은 어깨가 포개지며 좁고 곱은 등이 만져졌다.

그날 밤, 갈비뼈가 무너지듯 울었다. 엄마는 조립식 건물에 딸린 컨테이너에서 먹고 자며 공장 노동자들을 위한 밥을 짓는다고 했다. 식당 손님들도 당신 음식에 칭찬 일색이라며, 배고픈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는 것이 즐겁고 감사한 일이라 했다. 이후 엄마의 손가락은 점점 곱아 곧게 펴는 것이 어려워졌고, 앓는 소리를 하다 잠들곤 했다. 나는 왜 하필 식당일이냐며 자책하듯 엄마를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맏이 노릇을 하겠다며 수원에서 상경한 이후로, 늘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에 날숨을 흩뜨렸다. 엄마의 밥상이 필요했다. 불쑥 드는 그 공허함을 달래기 위해 몇 군데의 식당을 가곤 하는데, 문래동 <소문난 식당>이 그중 한 곳이다. 쇠망치 소리가 메아리처럼 텅텅 울리고 용접 불꽃은 발갛게 솟구치는 문래동에서 철공과 목공들에게 끼니를 제공하며 그들에게 휴식 또는 충전의 시간을 제공해온 지 벌써 26년이 된 식당이다. 노후한 슬레이트 가게 지붕 아래 삶아 빤 듯 깨끗한 행주들이 빨랫줄에 걸려 있다.

창문에 빨간 글씨로 적힌 ‘묵은지 고등어조림’에 이끌려 문을 열고 들어선다. 마루가 보이는 주택의 골격이 눈에 띈다. 40년 전 일본 관사를 개조한 흔적이다. 2년 전 이맘때까지만 해도, 선풍기 앞에서 도라지를 다듬고 있던 여주인이 보였다. 하지만 이제는 그녀의 며느리가 장사를 잇고 있다. 2대째 내려오는 집이다. 시어머니의 고향인 충북 영동에서 고춧가루를 구하고, 직접 농사를 해서 얻은 미나리와 도라지 등 갖가지 채소로 반찬을 만든다.

매일 아침 6시 반부터 100마리의 고등어를 손질하고, 갖가지 채소를 세척하며 다듬고 무치고 볶는다. 매년 겨울 2,000포기에 달하는 양의 김장을 한다. 김장 김치가 모두 떨어지면 2주에 한 번씩 100포기씩 또 담그고 숙성하는 과정을 반복한다. 일일이 배추를 다듬고 절구고 양념을 버무리고 속을 넣는 일이 고되지만, 꾀를 부리지 않고 숙명처럼 김치를 담근다. 밥은 영업시간에 맞춰 하루 두어 번 짓는다. 부러 밥은 솥에 눌러 짓는다. 식사 마무리에 대접할 숭늉을 만들기 위함이다.

메뉴는 묵은지 고등어조림뿐이라 사람 수만 묻고 주문을 받는다. 마루에 올라 자리를 잡으니 곧바로 차가운 보리차 한 주전자가 올라오고 이어 상이 가득 채워진다. 깊은 ‘스뎅’ 밥그릇에 밥이 수북이, 넙죽한 대접엔 걸쭉하고 향이 은은한 청국장이 듬뿍 담겨 있다. 그리고 일곱 가지의 반찬이 놓인다. 상 한가운데 붉은 윤기가 도는 고등어조림 한 그릇이 놓인다. 손바닥만치 넓은 배춧잎에 팔뚝만 한 고등어 반 토막이 놓여 있다.

뜨끈한 흰 쌀밥 위에 김치를 결대로 죽 찢어 올린 뒤 큼직한 고등어살을 그 위에 얹어 입안에 넣는다. 뜨겁고 빨간 감칠맛이 입천장에 닿았다가 고막을 건드리고 후두엽에서 골든벨을 울린다. 이토록 흔치 않은 ‘빨간 맛’에 뒤통수까지 얼얼한 것이다. 단맛이 도는 매콤한 조림 양념을 밥에 비벼 또 한 입을 먹고, 순하고 담백한 반찬을 순회하듯 골고루 먹는다. 아침에 만든 반찬이 한두 가지 떨어지면 계란 프라이를 낸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식용유를 쓰는 메뉴다. 다른 반찬엔 참기름이나 들기름을 쓴다.

그릇이 비워질 무렵, 숭늉 한 그릇이 나온다. 모든 접시를 비우고 보리차로 입을 헹구니 주인이 말한다. “우리 집 손님들은 참 희한해요. 보리차가 떨어져서 생수를 사다 내면 손님들은 건드리지도 않아요. 제가 깜빡하고 숭늉을 내지 않으면 가지 않고 가만히 기다리세요.” 그만큼 축적된 단골이 많다는 증거일 것이다. 식사가 무사히 끝났다. 저만치에서 반주를 하던 작업복 차림의 남자는 소주 한 병을 모두 비우고 가게를 나선다. 특별한 음식은 아니지만, 흔하지 않은 식사에 저절로 고개가 숙어진다. “잘 먹었습니다.”

이 집은 상호대로 소문난 식당이다. 유명 TV 음식 프로그램에서 섭외 및 출연 요청이 쇄도하지만 번번이 거절한다. 예전에 전파를 탄 적이 있는데 이후 배에 가까이 되는 매출을 올렸지만 기존 손님들이 식사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경우가 부지기수였기 때문이다. “돈이야 벌면 좋지만, 그만큼 신경을 못 써드리죠. 오랜 단골분들은 저희 음식을 연료로 일하시는 건데 저희가 욕심 부리면 안 되죠.” 나가는 손님을 배웅하는 그녀의 뒷모습에서 엄마가 떠올랐다. 그녀의 최선이고, 엄마의 최선이었을 것이다. 호화롭진 않지만 제철의 신선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고, 당신의 밥줄을 위해 밥상을 차리지만 배고픈 자들의 허기가 우선인 것. 그녀들의 최선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을 유일하게 하고, 평범한 것들을 비범하게 만드는 것이 아닐까.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겠다.

 

문래동 <소문난 식당>

주소: 서울시 영등포구 문래동48-30

영업시간: 평일 오전 11~오후 8, 주말 오전 11~오후 4

(일요일 휴무, Break Time 오후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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