뚝배기에 끓인 된장이 맛있는 이유

밀양댁 엄마 손 밥상

글과 사진 이미라

뚝배기에 끓인 된장이 맛있는 이유

 

결혼 17년차. 이 와중에 유독 살아남아 선반 한 편을 지키고 있는 녀석이 있으니 지름 10cm 남짓의 ‘뚝배기’다. 막내 고명딸로 귀여움을 받고 자라던 엄마는 결혼 후 시부모님을 모셨는데 결혼 초기 까다로운 시어머니의 입맛 때문에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고 한다. 엄마는 입이 짧은 할머니가 가장 좋아하시던 음식이 ‘뚝배기에 끓인 된장(이하 뚝배기 된장)과 마른 멸치’라고 하셨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치매로 3년을 고생하셨는데 엄마는 그 병수발을 직접 도맡으셨다. 아직도 할머니의 기저귀를 빨고 끼니때마다 밥상을 들고 할머니의 방으로 들어가던 엄마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하다. 배고프다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시는 할머니를 위한 밥상에는 항상 뚝배기 된장과 멸치가 놓여 있었다.

엄마가 끓이는 뚝배기 된장은 정말 간단하다. 육수를 따로 준비하지 않고, 먼저 불에 달군 뚝배기에 손질한 멸치를 넣고 달달 볶다가 된장 한 숟가락도 함께 넣고 살짝 볶아준 뒤 물을 붓는다. 송송 썬 파를 듬뿍 넣고 매운 고추를 한 개 넣는데, 다진 마늘을 넣지 않고서 파와 고추의 맛을 살리는 게 비법이다. 그리고 뚝배기에 넣어 보글보글 끓이기만 하면 완성! 이 초간단 된장은 짭짤하고 매콤해서 그냥 된장찌개처럼 숟가락으로 퍼먹으면 입이 얼얼해질 지경이다. 엄마는 혼수로 뚝배기를 사 주시면서 ‘입맛이 없을 때는 된장을 끓여서 호박잎쌈을 사먹던지, 열무김치를 넣고 밥을 비벼먹으라’고 친절하게 일러주셨다. 아직도 직접 담그신 된장을 내게 보내주시는데 엄마의 된장으로 끓이는 뚝배기 된장은 온가족이 좋아하는 별미다.

결혼 후 족히 3,000번은 된장을 끓인 뚝배기는 아직 멀쩡하다. 뚜껑이 살짝 깨져 있긴 하지만 앞으로 30,000번은 더 끓일 수 있을 만큼 튼튼해 보인다. 엄마의 레시피가 맛있긴 해도 맛이 강렬해서 나는 아이들이 먹기 편한 ‘순한 맛 뚝배기 된장’을 만든다. 달군 뚝배기에 멸치와 된장을 넣고 달달 볶다가 물을 붓는 것까지는 같다. 이후 잘게 깍둑썰기를 한 감자, 호박, 두부, 파 등 야채 일체를 듬뿍 넣고 끓이면 순한 맛 뚝배기 된장 완성! 잘 익은 야채들과 두부를 밥에 넣고 비벼 먹으면 곱게 으깨지면서 담백한 맛을 더해준다(솎아낸 어린 채소들 중 뿌리째 씻어 먹는 어린 열무는 꺼칠한 식감과 알싸한 맛을 제공한다).

난생 처음 도전하는 텃밭 농사라 어설픈 솜씨로 씨를 촘촘하게 뿌린 나머지 바글바글 자라나는 채소들을 솎아내야 했다. 보리를 섞어 밥을 지은 뒤 뚝배기 된장과 텃밭 채소를 준비해두자 온 가족이 좋아한다. 대접에 보리밥을 담고 싱싱한 상추와 열무를 손으로 뚝뚝 잘라 담은 후 된장을 넣어 비벼주니 고기를 좋아하는 아들 녀석들도 ‘오늘은 건강밥상이네’라며 신나게 먹는다. 식탁 가운데 놓인 작은 뚝배기를 보면 오직 나만을 위해 보글보글 끓고 있는 것 같다. 아무리 소박한 밥상이더라도 정성을 느끼며 먹는 식사가 맛이 없을 리 없다. 뚝배기는 정성을 들여 밥을 지으라는 엄마의 무언의 가르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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