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명과 야생이 공존하는 캘거리로

캐나다 생활기 ②

글과 사진 긴수염

문명과 야생이 공존하는 캘거리로

토론토에서 출발한 그레이하운드(버스)는 2박 3일간 밤낮으로 달리고 또 달렸다. 몇 시간 동안 지평선만 보이는 광경이 압도적이었다. 이렇게 아무것도 없을 수 있다니. 혹시 야생동물을 볼 수 있을지도 몰라 창에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가축 무리와 철새 떼를 보았고, 차에 치여 죽은 동물과 그 주변을 맴도는 까마귀를 간헐적으로 볼 수 있었다. 캐나다가 너무 넓어서 인간과 동물은 물론 모든 것의 밀도가 낮은 것 같았다. 오히려 야생의 밀도가 높을 뿐, 무엇이든 움직이는 생명체가 보이면 반가울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 상황에서 발생한 로드킬은 더더욱 안타까우나 좋아하는 까마귀를 실컷 봐서 만족스러운 양가감정에 휩싸였다. 갑자기 생각의 회로가 차단되고 잠이 쏟아졌다. 푹 자버리는 바람에 어느 마을에 정차할 때 먹을 것을 먹지 못하고 다음 마을까지 쫄쫄 굶어야 했다. 그 후로는 기사가 교대하거나 주유하기 위해 정차하면 얼른 내려 주린 배를 채웠다.

 

캐나다 사람들은 대체로 광합성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애초에 블라인드가 없는 건지 아니면 아무도 블라인드를 내리지 않는 것인지 통유리 그대로 달리는 버스는 마치 이동하는 자연극장 같았다. 지평선 위로 해가 뜨고 지는 장면이 생생했다. 낮에는 주로 윈도우 바탕화면처럼 파란 하늘에 하얀 구름, 초록 들판이 계속됐고, 밤에는 지평선 위로 펼쳐진 은하수와 별똥별의 향연이 펼쳐졌다. 마지막 날에는 시커먼 구름에서 지평선으로 벼락이 계속해서 내리꽂혔다. ‘저 벼락이 이 버스에 닿으면 그대로 죽겠구나’ 긴장하면서도 흥미진진하게 자연현상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문득 옆에 앉아 있던 사람과 ‘자연현상으로 죽는 것도 자연사 아닐까’, ‘버스를 타고 있었으니 사고사일 거야’라는 등의 하나 마나 한 대화를 나눴다. 그러자 긴장이 풀렸다. 장시간 달리며 알게 된 이들과 자연의 벼락쇼를 보며 감상평과 유언을 한마디씩 주고받는 동안 버스는 캘거리에 무사히 도착했다. 고생한 기사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고 짐을 찾는데 내 배낭이 없었다. ‘이럴 수가… 배낭에 당장 생활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이 들어있는데 대체 어디로 갔을까. 찾을 수는 있을까.’

 

배낭의 행방이 묘연한 데다 밤이 깊어 일단은 홈스테이로 향했다. 너무 늦은 시간이고 개가 많은 집이라 모두가 깰까 봐 들어가기 망설여졌다. 한참을 고민하다 도둑처럼 살금살금 들어갔으나 거실에서 자던 개에게 당연히 들키고 말았다. 현관 펜스 너머에 늑대 같은 실루엣의 개가 ‘왓’ 하고 낮은 소리로 나를 경계했다. 온몸의 털이 쭈뼛 서는 동시에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설마 개가 ‘What?’이라고 말한 건가? 이윽고 수많은 개가 다양한 소리로 짖어댔다. 지하에서도 개소리가 들려왔다. 결국, 호스트인 킴이 내려와 그들을 진정시키고 나를 방으로 안내해주었다. 킴의 몇 마디에 개들이 조용해지니 그가 마법사처럼 보일 지경. 방문을 열자 온통 동물 책과 동물 인형 그리고 자연물처럼 생긴 장식품들이 가득했다. 마법의 방처럼 꾸며진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짐을 풀고 그간의 기록을 하는데 생명체의 시선이 느껴졌다. 벽장에 뭔가 있는 것 같아 다가가 보니 도마뱀붙이였다. “안녕? 난 긴수염이야. 만나서 반가워!” 그는 보석처럼 빛나는 눈을 끔벅거렸다. 인사를 하는 건지 경계를 하는 건지 알 수 없지만, 오늘부터 룸메이트. 내 맘대로 긴꼬리라고 불렀다.

다음 날 아침, 킴과 그의 인간 가족 및 동물 가족을 만나 정식으로 인사하고 서로 소개했다. 개들이 나에게 우르르 몰려와 냄새를 맡았다. 나도 킁킁 냄새를 맡으며 그들을 익혔다. 순간, 내가 개가 된 것 같았고 현재 나의 서열(?)이 가장 낮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서둘러 집에서 필요한 규칙과 분위기를 파악했다. 일단 사람들의 이름을 외우고 동물들의 이름은 수첩에 특징까지 적어가며 외웠다. 이렇게 많은 개와 지내는 것은 처음이라 생소했지만, 무척이나 기대됐다. 그동안 개와 함께 살고 싶은 소망이 있었는데 드디어 이루게 된 것이다. 그것도 스물네 마리! 사람들이 나를 친근하게 대하자 개들도 경계를 풀고 나를 무리로 받아들였다. 킴은 마치 무리의 우두머리 같았다. 나는 지금 막 무리에 들어온 이방견(?) 같은 느낌. 킴은 동물에 관심이 많은 나에게 집에 있는 모든 동물을 상세히 소개해주었다. 임시로 보호하고 있다는 고양이들, 누군가 버렸다는 토끼들, 지인들이 킴에게 맡겨‘버린’ 커다랗고 시끄러운 앵무새와 각종 새, 비단뱀과 각종 도마뱀, 출처를 알 수 없는 수중 및 육지 거북 등 구조된 동물들이 집 안 곳곳에 살고 있었다.

동물로 가득한 이 집의 일상 패턴은 다음과 같다. 팀(킴의 배우자)은 새벽에 출근, 킴은 아침에 일어나 지하에 있는 개들의 방(켄넬)문을 하나씩 열어준다. 아침 인사인지 뭔지 모를 소리를 지르며 지상으로 야단법석 올라온 개들은 마당의 자갈밭으로 내달린다. 그들이 각자 볼일을 보고, 아침 식사를 하고, 자기가 좋아하는 햇빛 잘 드는 자리에 앉아 시간을 보내는 동안 킴은 다른 동물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먹이를 주고 출근. 이때 가장 나이 많은 개 럭키만 거실에 남고 다른 개들은 다시 각자의 방에 들어가 휴식을 취한다. 몇 시간 뒤, 킴이 돌아오면 모두가 잠자기 전까지 마당과 거실을 오가며 충분히 자유시간을 즐긴다. 그사이 퇴근한 팀은 덩치 큰 개들을 따로 데리고 나가서 넓은 공원에 풀어놓고 공 던지기를 무한 반복한다, 개들이 완전히 지칠 때까지. 작은 개들도 공원에 풀어놓고 산책하고 싶지만 맹금류가 낚아채 갈 수 있어 불안하다고, 안전을 위해 마당을 완전히 덮는 지붕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주변에 카요리(코요테)도 어슬렁거리는데 가끔 작은 개를 습격하는 사건도 있다고 한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캘거리는 문명과 야생이 공존하는 곳이라는 걸 실감했다. 항시 야생동물을 경계해야 하다니, 바짝 긴장되면서도 코요테를 만나고 싶어졌다.

배낭을 찾으러 시내로 나갔다. 분실물 보호소 구석에 있는 배낭을 발견하고 뛸 듯이 기뻤다. 알고 보니 중간 경유지에서 버스가 바뀔 때 내 배낭만 다른 버스로 갈아탔던 것. 어쨌든 다시 만나 다행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무거운 배낭을 메고 마침 퀴어 축제가 한창인 다운타운 구경을 했다. 토론토와 비교해서 미안하지만, 문명과 인구의 밀도가 훨씬 낮은 캘거리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게다가 로키산맥에서 흘러온 빙하수가 흐르는 에메랄드빛 보우강과 크고 작은 공원들이 산재해 있어 어딜 가나 자연을 만끽하며 하이킹을 할 수 있으니 참 마음에 들었다. 내가 살게 된 마을은 캘거리의 가장 외곽이며 지명은 크로우풋, 크로우차일드 등으로 까마귀와 관련돼 있었다. 이름에 걸맞게 까마귀도 많이 보였다. 그것도 내가 지구상의 까마귀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큰까마귀가 가로등에 앉아 ‘과악과악’, ‘또륵또륵’, ‘까꽁까꽁’ 말하는 모습을 매일 관찰할 수 있다니 횡재한 기분이 들었다. 공원마다 땅다람쥐가 돌아다니고, 커다란 잭래빗이 버스정류장을 겅중거리며 뛰어다니고, 달밤에는 코요테가 집단으로 울부짖고, 거대한 고슴도치처럼 생긴 포큐파인과 스컹크가 돌아다니는, 그야말로 문명과 야생이 공존하는 곳에 살게 된 것이 꿈만 같았다. 주소는 직역하면 ‘바위로 된 산등성이 황야’지만 내 맘대로 ‘로키산맥이 보이는 황야의 언덕’이라고 불렀다. 언제나 저 멀리 펼쳐진 로키산맥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보기만 해도 심장이 쿵쿵. 늑대를 만나러 가야겠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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