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메니코의 숨 쉬는 부엌

살아 있는 부엌

글과 사진 류지현

 

도메니코의 숨 쉬는 부엌

 

굽이굽이 언덕 위의 길을 돌아설 때마다 오밀조밀 붙어 있는 집들과 함께 바다 빛이 새로운 풍경을 펼쳐 보인다. 이탈리아 남부의 아말피 해안, 그동안 이런 곳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 억울할 만큼 아름다운 풍경에 넋을 놓아버렸다. 오늘은 아말피 해안 지역 산지의 작은 마을 푸로레(furore)에 있는 아그리 투리즈모(agriturismo: 농부들이 운영하는 이탈리아 특유의 숙박시설 겸 레스토랑으로 보통 직접 재배한 식재료로 음식을 제공한다)인 ‘세라피나(serafina)’라는 곳에서 묵기로 했다.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서 아마드가 뛰어가던 갈지자의 길은 명함도 못 내밀 오르막길을 자동차로 한참 올랐다.

 

이런 곳에 도대체 어떻게 농장이 있을까 싶었는데 이 경사진 농장에서 세라피나의 주인장 도메니코는 태어나고 자랐다. 그는 부모님의 농장을 물려받아 농부의 삶을 이어오고 있다. 산비탈에 자리 잡은 탓에 일이 힘들어 중간에 그만두고 도시로 갈까 생각한 적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아말피 해안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에게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이 동네 최초의 아그리 투리즈모 운영은 내가 가장 먼저 시작한 거’라는 도메니코의 말에는 고향과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했다. 응접실에 들어서니 천장 군데군데 방울토마토들이 덩이째 매달려 있었다. 이탈리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건조 토마토가 생각났다.

 

“이 토마토들, 건조하는 건가요?”, “아, 아니에요. 건조하려면 햇빛 아래 둬야죠. 이건 그냥 두고 먹으려고 보관하는 거예요”, “네? 그냥 이렇게 매달아놓아도 무르지 않고 잘 보관이 돼요? 마르지 않고요?”

좀 전에 도메니코가 허기를 채우라고 건네준 부르스케타(bruschetta: 이탈리아식 오픈 샌드위치로 살짝 구운 빵 위에 토마토, 다진 마늘, 올리브 등을 올려 먹는다)도 이 토마토로 만들었다고 한다. 부르스케타 위 토마토는 분명 과즙이 흥건한 토마토였는데, 신기할 따름이었다.

 

“수확할 시기가 다가오잖아요. 지금 먹는 토마토들은 지난해 거예요.”

 

7~9월에 수확하는 이 방울토마토들은 공중에 대롱대롱 매달려 전 세계에서 오는 손님들을 맞으며 8~9개월 동안 세라피나의 식탁을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방울토마토를 줄기째 수확한 후 실로 서로서로 연결해 덩이를 만들어 공기가 잘 통하는 곳에 매달아놓으면 된다고 한다.

 

“저도 돌아가면 한번 해봐야겠어요. 정말 신기해요.” “음, 모든 방울토마토를 이렇게 보관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이 지역에서 나는 방울토마토가 필요해요. 그중에서도 포모도리노 델 피에놀로(pomodorini del Piennolo)라는 특산품종이요. 다른 건 보관하는 도중에 그냥 물러버려요.”

 

마법의 지식을 발견한 것 같았는데, 무척 아쉬웠다. 오랜 세월 토마토를 먹어오면서 그에 맞는 음식을 개발해온 이탈리아의 전통이 이 특별한 토마토 품종도 지켜온 게 아닐까 싶었다. 토마토는 16세기에 남미에서 이탈리아로 전해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이탈리아 북부에서 관상용으로 쓰였지만 햇빛이 강한 이탈리아 남부로 전해지면서 왕성하게 번식해 대중들의 주요 식재료로 자리 잡게 됐다.

 

한국의 경우 토마토가 17세기에 들어왔다는 설과 19세기 일본을 통해 들어왔다는 설이 있다. 어느 경우라도 토마토를 이용한 전통음식이 남아 있지 않은 걸 보면 토마토가 과거에는 먹거리로 많이 환영받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가 1970년대 한국에서도 토마토 시설재배가 시작되면서 생산량이 증가해 많이 먹기 시작했다고 한다. 부엌에 냉장고 문화가 자리 잡기 시작한 1970년대부터 대중화된 식재료다 보니 토마토의 특성에 대한 이해나 보관 및 저장방식에 관한 문화는 한국에서 꽃피우지 못했다.

 

부엌을 보여주겠다는 도메니코를 따라 집 구경에 나섰다. 어느 전문식당 못지않게 타일과 스테인리스 스틸 주방가구로 마련된 부엌 안에는 어제 땄다는 호박이며 가지, 파프리카, 콩들이 가지런히 정돈돼 있었다. 오늘 저녁 손님들한테 요리해줄 재료다. 천장에는 나무 봉으로 성글게 짜서 만든 치즈 숙성 판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우리는 냉장고를 잘 안 써요. 고기나 우유처럼 특별한 경우를 빼놓고는 필요가 없어요. 필요한 채소는 텃밭에서 뜯어 먹죠. 그리고 어차피 숙성이 좀 되려면 수확한 후 하루 이틀 두었다 쓰고요. 남아도는 채소들은 병조림으로 만들어놓거든요. 과일도 그렇죠. 아, 그 어제 맛있다고 한 감귤주도 우리가 직접 만든 거예요. 감귤껍질을 넣어 만든 순도 높은 담금주가 있어요. 그거랑 물이랑 1대 1로 섞어 넣고 몇 개월이 지나면 제대로 된 감귤주 맛이 나요. 우리 집에 오는 손님들은 우리가 재배하는 재료로 만든 음식을 먹는다는 걸 알고 오니까 있는 재료를 최대한 이용해서 만들어요.”

 

현대식으로 정돈된 부엌 한쪽으로 살라미와 치즈 등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어두운 방이 눈에 띄었다. 안쪽 깊숙한 곳에 커다란 바위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낯선 공간이었다. 도메니코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이 집을 처음 지을 때 산등성이의 바위를 벽 삼아 만들어 집 군데군데에 아직 바위벽이 남아 있다고 한다. 지난 10여 년간 아그리 투리즈모를 운영하며 모은 돈으로 얼마 전에 집수리를 했는데 일부러 식재료를 보관하는 공간에는 바위를 그대로 남겨두었다고 한다.

“딱 그 맛을 내려면 꼭 이게 필요하죠. 아무리 같은 온도와 습도에서 숙성한다고 해도 이 맛이 안 나요. 이곳은 자연과 연결된 공간이에요. 날씨에 따라 상황이 변해요. 공기도 늘 살아 있고 바람도 다르다고요.”

 

무거운 나무문 사이로 들어가는 빛을 따라간 마당 창고에도 바위벽은 날것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뜨거운 7월의 날씨에도 시원한 공기가 코끝을 스쳤다. 햇빛을 최대한 피하고자 일부러 창고 앞에 차양 역할을 하는 공간을 만들었다고 한다. 창고에는 세계 곳곳에서 찾아오는 세라피나의 방문객들을 위한 커다란 와인통들이 여럿 있었다. 여기저기 걸려 있는 농기구들과 함께, 오늘 아침에 수확했다는 상추들이 상자에 담겨 있었다. 시원한 곳에 두려 했나 보다 싶었는데 도메니코가 상자 바닥에 자작하게 담긴 물을 보여주며 웃는다.

 

“집에 가서 이건 해볼 수 있겠네. 이게 뭐 어렵기나 해요? 그냥 물에 담가놓으면 되는데. 얘네도 다 살아 있는 생명이잖아요. 우리도 살려고 물을 마셔야 하는 거랑 똑같죠.”

필자소개 류지현

지속 가능한 사회를 위한 디자인을 연구하는 디자이너다. 친환경부엌 디자인 프로젝트 연구차 그가 거주하는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네덜란드, 포르투갈 등 유럽의 여러 나라와 페루, 쿠바, 베네수엘라 등 남미의 다양한 부엌을 방문해왔다. 디자인 관계상 다할 수 없는 긴 이야기는 단행본 <사람의 부엌>에 담았으며, 향후 <해피투데이>를 통해서는 책에서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냉장고로부터 음식을 구해내자> 프로젝트와 관련한 더 많은 정보는 savefoodfromthefridge.com에서 찾을 수 있다.

ⓒ(주)혜인식품-네네치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