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 탱크, 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탈바꿈하다

건축 공감

글과 사진 박창현

 

유류 탱크, 문화 공간으로 새롭게 탈바꿈하다

<마포 문화비축기지>

 

 

1973년 중동전쟁이 발발하고 제1차 석유 위기가 일어났다. 중동 산유국들의 석유 추출 가격 인상과 수출 금지 조치 후, 불과 3개월 만에 원유 가격이 3배로 폭등했고 이에 대한 대비책으로 석유 비축에 대한 의무화가 국제에너지기구에 의해 발의되는 지경까지 이르렀다. 이후 1978년에 한국도 석유 비축을 위한 탱크가 설치됐다. 지금의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 근처 매봉산 암반을 굴착해 석유비축기지를 구축한 것이다. 이때의 유류 저장 규모가 40만 배럴인데 이는 당시 서울 시민이 한 달간 사용할 수 있는 석유의 양이었다고 한다.

 

1978년 준공한 이후 40여 년간 일반인 접근이 철저히 통제됐던 석유비축기지는 2002년 한일 월드컵 당시 상암월드컵경기장을 건설하면서 세상에 알려졌다. 서울시는 그간 일반인에게 공개되지 않았던 이 미지의 땅을 도시 재생 방식으로 다시 조성하기로 결정했고, 국제 공모와 시민 공모를 통해 2017년 9월 1일 <마포 문화비축기지>로 새롭게 재탄생시켰다. 이곳 <마포 문화비축기지>는 축구장 22개에 달하는 크기. 가솔린과 디젤, 벙커시유 등을 보관했던 유류 탱크는 외부 원형을 살려 ‘공연장’과 ‘전시 공간’으로 그 모습을 바꾸었다. 이전에 서울시에서 진행했던 도시 재생 프로젝트인 <선유도공원>이나 어린이대공원 <꿈마루> 등의 좋은 선례를 따라 기존의 시설물을 잘 활용했고 기능과 필요에 맞게 일부 고치거나 새롭게 건물을 지었다.

<마포 문화비축기지>는 도로와 연결된 주차장을 지나 커다란 광장으로 이어진다. 이 큰 광장에서는 규모가 큰 공연 등 다양한 문화 활동들이 항시 펼쳐진다. 광장에서 정면을 바라보면 이곳 <마포 문화비축기지>가 매봉산 자락에 둘러싸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뒤로 상암동의 아파트들이 보인다. 좀 더 둘러보면 중간중간에 6개의 커다란 원기둥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이전에 유류를 저장하던 탱크들이다. 매봉산을 굴착해 위치시킨 유류 탱크는 밖으로 훤히 드러나 있거나 땅속에 묻혀 거의 보이지 않는 등 그 높이가 제각각이다.

 

 

국제 설계 공모를 통해 변모한 6개의 탱크

흥미로운 부분은, 유류 저장을 위한 탱크로 사용되던 이곳의 시설물들이 문화 공간으로 탈바꿈한 점이다. 국제 설계 공모를 통해 변모한 6개의 탱크는 각각 그 성격이 다르다. 먼저 가장 왼쪽에 위치한 ‘T(탱크)1 파빌리온’은 광장에서 가장 긴 오르막을 오르면 만날 수 있다. 긴 콘크리트 벽을 따라 안으로 들어가면 낮은 문이 나타나고, 문 안으로 들어가면 경사가 진 큰 내부 복도가 나타난다. 외부에서 들어왔을 때 어둡게 느껴지도록 계획해 만든 복도인데 복도를 따라 걷다 보면 화장실과 작은 강의실이 나타나고, 오르막 복도 끝의 큰 유리문을 통과하면 탱크 내부 공간에 이르게 된다.

벽과 천장이 모두 유리로 돼 있는 이곳은 6개의 탱크 중 가장 화려한 공간이기도 하다. 유리벽 밖으로 기존 탱크를 둘러싸고 있는 낡고 오래된 벽이 보이고 이 벽 상부를 보면 매봉산 암반을 투박하게 잘랐다는 걸 알 수 있다. 기존의 탱크를 해체한 후 깨끗하고 정교한 유리벽을 만들었다는 것은 이곳의 매력 중 하나다. 높은 유리 천장으로 햇볕이 들어오는데 해의 위치에 따라 내부로 유입되는 빛의 형태와 양은 계속 바뀐다. 마치 미래 공간 같은 느낌이다. 이곳은 내부를 채우는 소리도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전시를 위해 배치해둔 피아노 소리가 울릴 때마다 특별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T2공연장’은 ‘T1파빌리온’보다 더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 외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커다란 구조물의 일부가 남아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아마도 당시 유류 탱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조물인 듯하다. 이 구조물은 공연장의 무대 배경 벽으로 쓰이고 있다. 이곳은 ‘T1파빌리온’과 달리 외부 공연장으로 그 모습이 바뀌었는데 일부 탱크에서 해체한 철판을 벽으로 사용했고, 기울어진 바닥에는 앉을 수 있는 조형물을 만들어놨다. 공연장의 하부에는 지하 실내 공연장이 있어 기후에 상관없이 다양한 공연을 펼칠 수 있다.

 

 

미지의 세계로 닫혀 있던 장소들, 시민들에게로

‘T6커뮤니티센터’는 ‘T2공연장’과 이어진 탱크로서, 큰 규모 때문에 외부 광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던 탱크다. 이 탱크는 외부 벽면을 T1탱크를 해체한 재료로 만들었기에 그 색깔과 무늬가 독특하다. ‘T6커뮤니티센터’는 전체 문화시설의 중심으로서 운영사무소, 카페, 회의실 등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 다른 유류 탱크들과 다르게 두 개의 층으로 구성돼 있어 높이도 가장 높고, 사람들도 가장 많이 모인다.

‘T3탱크원형’은 이름 그대로 원래 있던 탱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이곳이 어떻게 사용돼 왔고, 비상시 사용할 유류를 저장하던 이전 모습이 어땠는지 사람들에게 잘 보여주고 있다. 오래된 재료와 형태를 보고 있으면 겹겹이 쌓인 시간의 무게가 느껴지기도 한다.

 

 

‘T4복합문화공간’은 공연을 위한 이색 공간이다. 탱크 내부 그리고 천장을 지지하는 기둥은 내부 공간감을 좀 더 극적으로 만들어준다. 그리고 탱크 중 유일하게 내부로 자연광이 거의 들어오지 않기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T5이야기관’은 이곳에 관한 이야기가 전시 형식으로 구성돼 있다. 석유비축기지에 대한 설명과 구체적 자료들이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있고, 문화비축기지로 탈바꿈하게 된 구체적인 이유와 설명이 연표와 함께 전시돼 있다. 약 40년 동안의 이야기가 이곳에 적층돼 있는 셈이다.

‘T5이야기관’을 빠져나오면 다시 너른 광장과 마주하게 되는데 이곳에서 보는 매봉산 산세와 어우러진 상암월드컵경기장을 보면 이곳의 성격을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서울에는 아직 정치적 혹은 군사적 이유로 일반인이 들어가지 못하는 장소들이 많이 남아 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미지의 세계로 닫혀 있던 장소들이 하나둘씩 시민들에게 돌아가고 있다. 이곳의 움직임처럼 앞으로 있을 다양한 시도들과 변화들이 기대된다.

 

 

위치: 서울특별시 마포구 증산로 87

설계: 허서구, RoA 건축사사무소

대지면적: 106,824.61

연면적: 7,529.47

홈페이지: parks.seoul.go.kr/culturetank

문의: 02-376-8410

개장: 2017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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