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가 되고 나서야 숨다운 숨을 쉬게 되었다 제주해녀 이사랑

마이 홀릭 라이프

인터뷰 김미경

사진 이민영

 

해녀가 되고 나서야 숨다운 숨을 쉬게 되었다

제주해녀 이사랑

 

해녀의 삶과 해녀의 문화는 인간 세계에 존재하는 여러 가지 신비로움 중 하나다. 해녀들만의 독특한 문화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만큼 전 세계적으로 문화적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생명력, 강인함, 개척정신의 상징이자 그 자체로 제주 여성의 상징이기도 한 제주 해. 그녀들은 아 있는 전설이라 불린다.

대대손손 물질하며 살아온 제주 토박이 해녀가 아니라 고작 1년차 외지 출신 해녀의 인터뷰를 자처했던 것은 그녀가 원래부터 그쪽 세계에 존재했던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바다 속에서 상어와 마주치고 난 후 그녀가 뭍으로 나와 한 일은 상어 퇴치법을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는 것이었다. 아직은 육지에서 익힌 감각과 생존법이 몸에 더욱 강하게 배어 있는 초보 해, 녀 세계의 오묘한 질서를 이제 겨우 체득해나가기 시작한 아기해녀 이사랑. 하지만 그토록 미숙한 그녀가 목격한 제주 바닷속 풍경, 해녀가 된 이후 그녀가 마주한 가장 아름다웠던 순간들에 대해 나는 묻고 싶었다. 그리하여 볕이 뜨거웠던 어느 날, 그녀의 물질구역인 중문색달해변 해녀의집으로 그녀를 찾아갔다.

제주 바다의 반짝이는 표면만 알고 있을 뿐 깊은 바다 속은 어떤 모습인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내게, 그녀는 자신의 눈과 손으로 보고 만진 물속 세상을 들려주었다. 몸에 아무런 장치를 더하지 않고 맨몸으로 10미터 이상 잠수를 해서 자연이 준 것들을 건져 올리는 삶에 대해 이야기해주었다. 고작 1년 입었을 뿐인 그녀의 자그마한 잠수복은 어찌나 해지고 색이 바랬는지 나는 그 옷이 물려받은 옷인 줄만 알았다.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해녀의 고된 삶이 보이는 듯했. 그 낡은 고무옷을 입고 해녀 *삼촌들과 200미터 먼 바다를 헤엄쳐 나가 하루에 100번이고 200번이고 잠수를 했을 그녀의 삶을 그려보았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그녀는 자신이 숨을 얼마나 오래 참을 수 있는지 몰랐다고 한다. 고꾸라져 물속으로 첨벙 뛰어드는 다이빙의 쾌감도 몰랐다. 제주에 오지 않았더라면 끝끝내 몰랐을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해녀가 되기 전의 그녀처럼, 어쩌면 우리 역시도 스스로에 대해 많은 것을 모른 채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닐까.

*제주에서는 남녀를 불문하고 가까운 손윗사람을 삼촌이라 부른다.

 

해녀의 세계로 진입하다

여기 사물함마다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네요. 색달 해녀분들 성함인가요?(인터뷰 장소인 색달 해녀의집 뒤편 작은 공간에는 빨랫줄에 널린 해녀복과 해녀들의 사물함 등이 있었다.)

네. 지금 활동하시는 분들이에요. 한 분은 편찮으셔서 자주 못 나오시고 주기적으로 오시는 분은 열다섯 분. 원래 제 사물함 옆에 저랑 같이 들어온 동기 언니 사물함이 있었는데 이젠 이름이 지워졌어요. 해녀 일이 안 맞는 거 같다고 떠났거든요.

 

사물함에 ‘이사랑’이라는 이름이 처음 쓰였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드디어 나도 어촌계 일원이 됐구나’ 싶었죠. 들어오기까지 진짜 힘들었거든요. 근데 좋은 건 잠깐이고, 요즘엔 ‘아이고 내일 또 물질이구나’ 그래요.(웃음)

 

‘어촌계’라는 건 해녀들로만 구성이 돼 있나요?

저희 어촌계는 계장님 포함해서 전부 여자 해녀들이에요. 다른 곳은 뱃일 하시는 어부들이랑 해녀들이 같이 모여 있는 어촌계도 있어요. (창 너머 바다를 가리키며) 저기 바닷물 색깔이 짙게, 까맣게 보이는 바다가 저희 물질 구역이에요. 바닥이 모래가 아니라 돌이라서 바다 표면이 저렇게 진하게 보이는 거예요.

 

제주는 하나의 섬이지만 한라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기후가 다 다르고 바닷속 해산물의 생태도 다르다고 들었어요.

맞아요. 전 남쪽에 있지만 저랑 해녀학교 같이 졸업했던 언니들은 대부분 동쪽에서 물질하고 있거든요. 색달 쪽은 2~3월쯤 첫 미역을 따는데 동쪽 바다엔 그 시기에 미역이 안 올라와요. 성게 알이 여무는 시기도 늦어서 저흰 지난주부터 성게를 잡았는데 언니들은 다음 물때부터 잡을 거라고 하더라구요.

 

해녀 세계는 텃세가 심하다고 들었는데 발을 들이는 게 힘들진 않았어요?

전혀! 오히려 외지인인 저를 열린 마음으로 받아주셨어요. 저희 계장님이 3대째 해녀이신데 작년에 그분 어머님이 93세에 돌아가셨거든요. 근데 돌아가시기 일주일 전까지도 물질을 하셨대요. 그분들껜 이 바다가 평생 일궈온 터전인 만큼 후계를 이어야 된다는 사명감이 강하세요. 그런 걸 떠나서 제가 삼촌들 딸, 손녀뻘이다 보니 워낙 절 예뻐해주시구요. 제가 쓰는 작살이나 테왁(부표) 같은 도구도 계장님이랑 다른 삼촌들이 쓰시던 거 물려받은 거예요. 한번은 어떤 삼촌이 “저기 전복이 있는데 팔이 안 닿는다” 하시기에 따 드렸더니 “아이고 젊으니까 팔도 길다” 하면서 기뻐하시더라구요. 그 전복을 팔고 나서 제게 만 원을 쥐어주셨는데 마음이 너무 짠했어요. 삼촌들이 정말 정이 깊으세요. 제가 잘 정착할 수 있게 어떻게든 하나라도 더 도와주려 하시지 텃세 같은 건 전혀 못 느꼈어요.

 

물질하기 전 해녀 삼촌들이 어떤 말씀을 많이 하세요?

제가 멋모르고 여기저기 다니니까 걱정이 되시나 봐요. 파도에 휩쓸리기 쉬운 포인트라든지 물이 깊은 곳을 알려주시면서 “사랑아 저쪽 근처는 가지 말아라”, “사랑아 욕심 내지 마라” 하고 말씀해주세요. 한번은 계장님이 ‘쏘치’라는 물고기를 잡아서 보여주셨거든요. 쏘이면 엄청 아프고 몸이 마비될 수도 있는 위험한 고기라서 절대 잡으면 안 된다고 하셨는데 며칠 있다가 그게 딱 보인 거예요. 장난기가 발동해서 일부러 작살로 잡아가지고 들고 다녔다가 삼촌들한테 막 혼났어요.(웃음)

할머니한테 혼나는 손녀 같네요.(웃음) 물질하는 날의 일과가 궁금해요.

하절기엔 보통 5시 반에 이곳 해녀의집에 집결해요. 고무 옷으로 갈아입고 도구를 챙겨 들고 물질할 곳으로 출발해서 7시쯤 바다에 입수를 하구요. 겨울에는 불턱에 둘러앉아서 불 쬐고 몸 좀 녹이고 시시콜콜한 얘기들을 나누는데 그게 일종의 준비운동이에요. 처음엔 해녀학교에서 배운 대로 저 혼자 손 풀고 발 풀고 심호흡하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삼촌들 방식에 동화가 됐어요.(웃음) 그러고서 서너 시간 정도 조업을 마치면 해녀의집으로 돌아와서 테이블이랑 파라솔 펴고 그날 잡은 것들을 파는 거죠. 6월부터는 소라가 금채기(채취 금지 시기)니까 그런 경우는 수협에서 사다 쓰긴 하지만 보통은 저희나 근처 어촌계 해녀들이 잡은 물건을 팔아요. 마치는 시간은 오후 6시 정도? 하루 12시간 일하는 셈이니까 일당 7만 원이라 치면 결코 많은 돈을 버는 일이라곤 할 수 없죠.

 

서너 시간 조업하면 해산물을 보통 얼마만큼 잡아요? 감이 잘 안 잡히네요.

그때그때 달라요. 처음엔 하나도 못 잡아온 날도 있었어요. 계장님이 짠한 마음에 2~3만 원이라도 챙겨주시면 그걸 받아들고 터덜터덜 집으로 갔었는데 이젠 일당은 하려고 분발하고 있어요. 전복, 소라, 쥐치, 달고기, 광어, 붕어…, 잡으면 그게 곧 돈이에요. 모랫바닥에 몸통을 숨기고 입만 뻐끔뻐끔하고 있는 광어라든지, 눈이 마주쳐도 안 도망가고 보호색을 띤 채로 바닥에 가만히 붙어 있는 문어를 보면 좀 불쌍한 마음이 들면서도 제 손은 이미 작살을 뻗고 있더라구요.

조업 안 하는 날은 어떻게 보내세요? 꼬박 일주일을 물질에 쏟느라 살림도 버겁겠어요.

집안일은 남편이 거의 다 해요. 오죽하면 저한테 물어보더라구요. 해녀 남편들은 다 이렇게 사느냐고.(웃음) 전 물질 끝나면 곤죽이 되는데 다른 삼촌들은 집안일에다 밭일까지 겸하시니 정말 대단하죠. 물질 안 하는 날에도 2인 1조로 당번을 짜 돌아가면서 해산물을 팔기 때문에 해녀의집으로 출근할 때가 있어요. 물질한 날 팔고 남은 물량이라든지 수협에서 공수한 해산물을 파는데 이날 버는 돈은 해녀들의 공동수익이에요. 또 겨울엔 귤을 따러 다니기도 해요. 고백하자면 제가 귤을 정말 못 따거든요.(웃음) 그런데도 계장님이 용돈벌이 하라고 일부러 절 부르세요. 물질 쉴 땐 아무 돈벌이도 못하고 있는 걸 뻔히 아시니까…. 일당도 다른 삼촌들이랑 똑같이 챙겨주세요. 이렇게 챙김을 많이 받고 있으니 감사한 마음밖에 안 들어요.

 

제주로 이끌리게 된 이유

서울에서 공개중개사 일을 했다고 들었는데 제주에 정착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10년 전 남편이 교통사고를 크게 당해서 6개월간 병실에 누워 있었거든요. 그 후유증도 있고, 점차 서울 생활을 지쳐하기도 해서 요양 차 오게 됐어요. 제가 대학을 제주에서 나와서 이곳에 대한 그리움도 늘 있었구요. 제주는 저한테 제2의 고향이었고 늘 제 마음 한편에 있던 곳이었는데 막상 이렇게 눌러 살게 될 줄은 몰랐죠. 사실 제주에도 부동산은 있으니까 공인중개사 자격증만 믿고 무작정 내려왔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해녀가 돼서 인터뷰를 하고 있네요.(웃음)

 

그러게 말입니다.(웃음) 해녀학교는 어떻게 입학하게 된 건가요?

남편이 신문에서 우연히 법환해녀학교 2기 모집 광고를 보고 ‘당신이 한번 해보면 좋을 것 같다’면서 권유를 했어요. 제가 평소에 번지점프라든지 거친 액티비티 활동을 굉장히 좋아했거든요. 마침 해녀학교가 집 근처이기도 해서 이래저래 타이밍이 잘 맞았죠. 그렇게 해녀학교에 등록을 하고 두 달 과정을 수료했어요. 매주 법환 앞바다에서 실제 어촌계 해녀분들 지도하에 실습을 하고, 호흡법이라든지 이퀄라이징 수업을 받으면서 기본기를 익혀갔어요.

 

번지점프를 좋아하다니 담력이 대단하신데요!

에이, 그런 건 하나도 안 무서워요.(웃음) 근데 물속에선 까만 비닐봉지만 떠다녀도 소스라치게 놀라게 되거든요. 바다에 쓰레기 버리면 해녀들이 이렇게 놀랍니다, 여러분!(웃음) 사실 제일 무서웠던 순간은 상어랑 마주쳤을 때예요. 저 멀리서 왔다 갔다 하는 상어를 보는 순간 <죠스> 같은 영화가 막 생각나면서 심장이 터져버릴 것 같았어요. 작살을 꼭 쥐고서 가만히 있으니까 상어가 곧 사라졌는데 시야에서 없어지니까 어디서 또 나타날지 몰라서 더 무서웠어요. 어떤 날엔 상어가 절 따라와서 혼비백산했는데 아마 제 오리발을 오징어로 착각해서 그랬던 게 아닌가 싶어요. 상어 산란기인 5~6월경이면 이렇게 가끔 연안에 출몰한다고 하더라구요.

 

해녀라는 직업에 따르는 위험이 새삼 크게 와 닿네요.

한번은 계장님이랑 물질을 하다가 이동하는 수애기(돌고래의 제주 방언) 무리 안에 갇힌 적이 있어요. 수애기들이 우리 앞으로 쑥쑥 지나가는데 그 속도가 장난이 아닌 거예요. 부딪치기라도 하면 큰일나겠더라구요. 수애기들이 떼 지어 펄떡펄떡 지나갈 때마다 삼촌들이 그쪽을 향해 “물알로~ 물알로~(물 아래로 내려가라)” 하면서 소리를 지르곤 하셨는데, 이래서 삼촌들이 무서워하시는구나 싶었어요.

 

들을수록 신기한 얘기들이에요. 전 수영을 못하거든요. 언젠가는 몸이 가득 잠길 정도로 바다 깊숙이까지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네요.

제가 물질로 먹고 살다 보니 ‘원래 물을 좋아했을 것 같다’는 말을 많이 듣는데요. 사실 해녀학교 다니기 전까지는 물에 대한 취미가 전혀 없었어요. 오히려 ‘물’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기억이 어릴 적 우물에 빠져 죽다 살아난 경험이에요. 물질에 도움이 될까 싶어 프리다이빙, 스쿠버다이빙을 배우기 시작한 것도 작년 9월의 일이에요. 배워 보니 그것도 재밌더라구요. 이렇게 직접 부딪쳐보기 전에는 스스로도 전혀 몰랐던 부분이에요.

 

해녀에게 가장 필요한 자질은 뭘까요? 물에서 숨 오래 참기라든지….

물속에서 오래 숨을 참으면 위로 올라와서 회복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그만큼 길어져요. 제가 프리다이빙 배우면서 기록을 재봤는데 4분 6초까지 숨을 참은 적이 있거든요. 다들 감탄하면서 ‘너 물질 잘하겠다’ 그랬는데 전혀 그렇지 않아요. 제가 호흡 가다듬고 물에 한 번 들어갔다 나올 때 삼촌들은 열 번씩 들어갔다 나오세요. 기껏해야 30~40초 사이에 소라나 성게를 재빨리 건져오시거든요. 빨리 바닥을 훑어보고 없으면 빨리 올라오고 이런 반복 작업이 제일 중요하더라구요.

 

이제 1년 남짓 활동한 아기해녀다 보니 아무래도 삼촌들께 배워야 할 것들이 구만리처럼 쌓여 있을 수밖에 없겠어요.

전 벌써 꾀가 늘어서 물 밖에서 한참 내려다보다가 뭔가가 하나 보이면 바닷속으로 들어가 건져오곤 하는데 삼촌들은 보이든 안 보이든 무조건 물속으로 들어가서 찾아요. 잡아온 물건들을 보면 제가 잡은 광어나 문어는 온통 상처투성이인데 삼촌들 망사리(그물주머니)에 들어 있는 물건들은 깨끗하구요. 지난번엔 잡은 고기를 망사리에 넣다가 놓쳐서 다시 쫓아가서 잡기도 했고, 골갱이로 문어를 휘감아서 잡아당기다가 머리만 덜렁 뜯긴 적도 있어요. 나머지 부분을 마저 가져오려고 내려갔더니 글쎄 다리만 구멍으로 쏙 도망가버렸더라구요. 삼촌들은 어떻게 그렇게 멀끔히 잡아오시는지 모르겠어요.(웃음) 또 엊그제는 돌에 전복이 붙어 있길래 신나는 마음으로 빗창(전복 채취 도구)을 가지고 내려가서 훅 뗐는데 알고 보니 빈껍데기였어요. ‘아아 욕심이 눈을 가렸구나. 나는 살아 있는 전복이랑 죽은 전복도 아직 구분을 못 하는구나’ 싶어서 부끄러웠어요. ‘착하게 살아야겠다’, ‘마음을 내려 놔야겠다’ 그런 마음도 덩달아 들었구요. 욕심을 가지고 들어가면 내 옆에 있는 것도 안 보여요.

 

물질하면서 마음공부까지 하시네요.(웃음) 삼촌들한테 크게 혼났던 적은 없어요?

한번 난리가 났던 적이 있어요. 이 앞에 ‘양식장 바다’라고 해서 해녀들이 아예 안 건드리는 구역이 있거든요. 진짜 양식장이 아니라 수산자원 보호 차원에서 해녀들끼리 자발적으로 조업을 안 하기로 약속한 구역이에요. 근데 한번은 그 근처에서 제가 뭘 잡았다가 굉장히 혼이 났어요. 삼촌들 보시기엔 제가 양식장 경계를 넘었던 거예요. 너무 노발대발하셔서 이젠 그쪽 근처에 얼씬도 안 해요.(웃음) 저희가 7일 조업하고 8일 쉬는 것도 맨날 바다에 들어가면 물건들 씨를 말려버리니까 그걸 막기 위해서이기도 해요. 그런 식으로 당신들만의 룰을 정해놓고 이렇게 평생 물질을 해오신 거예요.

 

해녀 일이 오죽 고되면 ‘저승에서 벌어 이승에서 쓴다’는 말이 있을 정도인데, 계속 해녀로 살아가고 싶은 마음인가요?

아마도 해녀는 숨을 멈춘 상태로 일하니까 저승에서 번다고 하나 봐요. 물질 자체가 정말 힘든 것도 사실이에요. 허리에 두꺼운 납을 5킬로그램이나 차고 헤엄쳐야 되니까 몸이 너무 쑤시고, 잠수병 때문에 두통약을 달고 살고, 겨울엔 고무옷 안으로 들어오는 바닷물이 체온을 뺏어가서 동상, 저체온에 시달려요. 지난겨울엔 정말이지 울면서 다녔던 거 같아요. 어떻게 버텼는지 모르겠어요. 그런데도 이 일을 그만두고서 후회할 생각을 하니까 도저히 못 그만두겠더라구요…. 추우면 추운 대로, 더우면 더운 대로 묵묵히 바다에 들어가시는 삼촌들을 보면 저 혼자서 빠질 수가 없어요. 당장은 힘들어도 삼촌들한테 더 열심히 배워서 빨리 해녀로 자리잡고 싶어요.

 

가끔 서울에서의 삶이 그리울 때도 있지 않아요? 공인중개사 일을 계속했다면 돈도 더 많이 벌고 지금 같은 몸 고생은 덜 하지 않았을까요?

그리운 거 없어요. 거의 10년 넘게 살았던 곳인데도 서울에 대한 정이 아예 없어요. 추억도 별로 없고…. 돌아보면 서울에선 내가 사는 전셋집이 진짜 내 집 같지가 않아서 정을 못 붙이고 살았던 거 같아요. 일할 때도 내면의 나를 다 보여주지 못하고 숨죽이면서 살았다는 생각이 들구요. 근데 제주로 오고 나선 그런 기분이 안 들어요. 제주에 정착한 지 햇수로 4년째인데 전 여전히 제주가 너무 좋고, 바다가 저의 평생직장이라는 마음으로 살고 있어요.

 

하지만 어떤 면에선 제주가 ‘서울화’되고 있다는 생각도 들어요. 일례로, 도로를 달리다 보니 대형 편의점들이 끝도 없이 나타나더라구요. 사소하지만 제주의 변화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 같았어요.

맞아요. 너무 빠르게 바뀌니까 걱정도 돼요. 서귀포시, 제주시 중심가는 진짜 서울 강남 저리 가라예요. 집값도 너무 비싸졌고, 난개발에 날림공사로 지은 집들도 많아서 저희 부부 역시 겉만 보고 순진한 마음으로 제주에서 집을 샀다가 크게 데인 적이 있어요. 물질하러 다니다 보면 공사가 중단돼서 짓다만 집들이 폐가처럼 늘어서 있는 곳이 종종 보여서 안타깝고, 제주 사람들과 외지인들 간의 갈등이 커지는 상황도 우려스러워요.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결국 그간 저평가됐었던 제주의 땅들이 본래의 가치를 인정받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제주에서 해녀 님만의 아지트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오늘처럼 햇볕이 뜨거운 날에는 산에 자주 가요. 시오름, 정방폭포, 절물 휴양림을 특히 좋아해요. 해녀학교가 있는 법환 바다가 진짜 예뻐서 드라이브하는 것도 추천하구요. 오늘이 하례 어촌계 성게 잡는 날이니까 지금쯤 그늘에 모여서 성게를 까고 있을 텐데, 시간 되면 가셔서 한번 잡숴보세요. 다음에 제주로 숨 쉬러 오시거들랑 색달 해녀의집도 꼭 한번 들러주시구요.(웃음)

이사랑

제주 서귀포시 색달 어촌계 소속 1년차 해녀. 전직 공인중개사였던 그녀는 3년 전 남편과 함께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했다. 20167월 법환해녀학교를 졸업했으며, 그해 10월부터 색달동 중문관광단지 안에 있는 중문색달해변에서 15명의 제주 해녀들과 함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치열하게 물질을 하며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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