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의 허기를 달래고 시름을 어루만져주는 충무로 인현시장 백반집

충무로 인현시장을 이야기하자니 내 얘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고 1년간 직장 생활을 하다 서울로 올라왔다. 예정된 직장이 있어 상경했지만 무슨 이유에선가 나의 입사가 어그러졌다. 짐을 다 싸들고 왔고, 부모님의 기대 탓에 다시 내려갈 수 없어 당시 명동에 있던 취업 준비학원에 다닌 후 충무로의 작은 편집회사에 취직했다. 이미 너무 오래전이고 6개월 남짓 다닌 회사라 지금은 회사 이름도 기억나지 않지만 회사의 위치는 뚜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다. 충무로역 8번 출구 앞. 그 회사를 다니면서 점심 식사 시간이면 회사의 식권을 들고 당시 선배들이 이끄는 대로 밥을 먹으러 다녔다. 한두 번 다녀서는 혼자서 다시 찾아갈 수도 없는 구비 구비 좁은 골목에 있던 식당들. 나는 남색 잠바를 입은 거친 아저씨들 사이에서 밥을 먹었다. 조금 분위기 있는 밥집이나 분식집에서 밥을 먹고 싶었지만 막내인 내겐 선택권이 없었다. 밥집으로 국숫집으로 탕집으로 선배들이 이끄는 대로 다녔고 시간이 지나 텔레비전의 각종 생활 정보 프로그램과 음식집 소개 프로그램에 그 집들이 소개되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폭 2미터, 길이 202미터, 상점 110여 개가 모인 맛의 낙원
그 식당들이 있던 충무로 인현시장을 다시 찾았다. 영화거리와 인쇄골목으로 유명한 충무로의 뒷골목에 자리 잡고 있는 그곳은 20년 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좁은 골목길에 100개가 넘는 점포들이 밀집해 있어 시장 어귀에 들어서는 순간, 몸을 최대한 움츠리고 걸어야 한다. 걷다 보면 이 좁은 길로 오토바이까지 지나간다. 충무로 인쇄골목에선 매우 흔한 일이니 짜증내지 말고 살짝 몸을 옆으로 돌려 오토바이에게 길을 터준다. 이것이 이 동네의 규칙이다.
인현시장엔 유독 밥집과 선술집이 많다. 주변에 살림집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작은 사업장들이 생기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그래서 지금은 이곳을 ‘맛의 낙원’이라고 부른다. 무엇보다 이 시장 최고의 매력은 바로 가격이다. 식당들마다 내어 놓는 가짓수 많은 반찬에 국 혹은 찌개, 생선구이 혹은 제육볶음 등으로 차려낸 백반의 가격은 5,000원에서 7,000원 사이다. 단무지와 중국산 김치만 덜렁 내주는 분식집을 제외하면 이제 서울시내에서 5,000원으로 한 끼 식사를 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지만 인현시장에선 여전히 가능한 일이다. 퇴근 후 술 한 잔 하기에도 그만이다. 밥집들 대부분은 저녁이면 각자 나름의 장기 음식을 안주로 술을 판다. 당연히 안주 값도 저렴하다. 실제로 인현시장의 대표 밥집의 저녁 술안주 가격은 5,000원으로 시작하는 계란말이부터 15,000원 닭도리탕(大)까지인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인현시장에서 맛있는 밥집을 고르는 일은 매우 쉽다. 어떤 식당을 들어가도 평균 이상의 맛을 낸다. 그러지 못하면 입맛 까다로운 충무로 인쇄 기술자들의 발길이 끊기기 때문에 문을 닫아야 한다. 무엇을 먹을 건지 계획을 잡고 시장의 시작 지점부터 끝까지 걸으며 가게들을 살펴본 후 당기는 집으로 들어가면 된다. 그것도 어렵다면 점심때는 <호남식당>, 저녁때는 <우리식당>을 찾아보길 권한다.

전라도 시어머니 손맛 이어받은 손 큰 경상도 아줌마, <호남식당>
<호남식당>은 인현시장에 두 개가 있다. 인현식당을 찾아오는 길목 대로변에도 있고, 시장 안쪽에도 있다. 대로변의 식당은 물갈비로 유명하고, 내가 소개할 <호남식당>은 오징어백반이 대표 메뉴이다. 살이 통통한 오징어볶음과 생선구이 그리고 맛있는 계절김치로 차려진 이 밥상의 가격은 1인분 6,000원이다. 놀랄만한 가격이다. 맛은 어떤가? <호남식당>의 사장님은 모습도 곱지만 손맛이 일품이다. 특히 김치 맛이 좋아 맛의 비결을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전 경상도 여자예요. 중매로 결혼을 했는데 전라도 남자와 했지요. 시어머님이 워낙 솜씨가 좋으셔서 결혼해 시어머님께 음식을 배웠어요. 지금 제 손맛은 그래서 전라도 손맛입니다. 김치나 찌개, 반찬의 양념 모두 전라도식입니다.”
이집은 테이블이 여섯 개밖에 안 되는 작은 식당이다. 점심시간에 사람이 많이 몰리기 때문에 1시 이후에 찾길 추천한다. 평일에는 밤 11시 전후에 문을 닫지만 토요일에는 점심 이후에 바로 문을 닫는다. 오징어백반은 평일에만 판매한다.

청국장과 임연수어 구이로 낮에도 저녁에도 인기만점 <우리식당>
<우리식당> 근처를 지날 때면 구수한 옛날식 청국장 냄새가 발길을 멈추게 한다. 인현시장 내에서도 인기가 높은 식당이며 규모가 크다. 이 집의 인기 점심 메뉴는 된장찌개와 청국장, 저녁 메뉴는 임연수어 구이다. <우리식당> 청국장은 유달리 냄새가 구수하고 진하다. 끓여낼 때 마지막 단계에 콩가루를 넣어 맛이 고소하고 자박하다. 한 끼 5,0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도 마음을 흐뭇하게 한다. 반찬으로 나오는 꽁치조림은 요즘 말로 ‘엄지 척’ 할만하다. 대부분 식당이 가격이 저렴한 통조림 꽁치를 사용하는데 이 집은 아니다. 밥도 주문하면 바로 퍼준다. ‘스뎅’ 밥공기에 담겨 있던 밥이 아니다. 손님이 주문할 때마다 밥을 퍼주는 일이 꽤나 번잡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난 후부터는 밥을 퍼주는 식당에 애정이 특히 더 간다. 임연수어 구이도 일품이다. <우리식당>의 임연수어 메뉴는 사실 기름에 튀겼다는 표현이 더 맞다. 고온에 튀기듯 조리한 임연수어는 속살이 매우 부드럽다. 술안주 메뉴라 점심시간에는 맛을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저녁 9시 30분 전후에 문을 닫고 토요일에도 영업을 하니 주말 저녁에 찾을만하다.

식사 후엔 꼭 들러보자, <할머니 찹쌀도너츠>와 <대한극장>
인현시장의 ‘랜드마크’와도 같은 명물 맛집을 아직 소개하지 않았다. 찹쌀도너츠(‘도넛’이 표준어지만 시장표 도넛은 이상하게도 꼭 ‘도너츠’라 부르고 싶어진다)와 김밥 한 줄 크기만 한 김말이를 파는 포장마차다. 주인 할머니가 찹쌀도너츠와 김말이를 튀겨주시는 이곳은 간판이 따로 없어 나는 <할머니 찹쌀도너츠>라고 마음대로 부르고 있다. 웬만해선 찹쌀도너츠를 잘 사먹지 않는 나도 이집 도너츠는 먹는다. 일반 도너츠보다 4배 이상 더 큰 크기, 언제나 뜨끈하게 유지되는 온도, 넉넉한 팥의 양이 매력이다. 찹쌀도너츠와 함께 김말이도 꼭 먹어봐야 한다. 김말이 하나의 크기가 김밥 한 줄만큼이나 큰 이곳 김말이는 단지 크기만 한 게 아니라 내용도 알차다. 당면과 두부, 채소, 김치로 속을 채워 흡사 만두 같다.
인현시장에서 밥을 먹고 찹쌀도너츠와 김말이를 디저트로 챙겨 먹은 후 길 건너 대한극장에서 영화를 한 편 보고 다시 인현시장에서 저녁 겸 술 한 잔 할 수 있다면 그날은 완벽한 탐식유랑을 했다고 자랑해도 좋다. 대한극장은 1955년 20세기 폭스사에 의해 설계되었고 당시에는 단관이었으나 2001년 11개 관을 갖춘 멀티플렉스로 새단장을 했다. 이런 역사를 증명하듯 이곳에선 유명 배우의 초상이라든지 오래된 영화의 명대사 등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또한 옥상에는 꽃으로 단장한 정원이 있다. 이 정원에서는 남산은 물론 충무로와 을지로 일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계절마다 꽃이 피는 이 옥상정원에 6월엔 장미가 한창일 것이다.

<호남식당> 중구 마른내로6길 31
<우리식당> 퇴계로41길 39
<할머니 찹쌀도너츠> 충무로2길 37
<대한극장> 퇴계로 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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