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인터뷰 ‘보잘것없는 블록버스터’를 꿈꾸는 만화가 웹툰 <유미의 세포들> 작가 이동건

따뜻한 인터뷰

인터뷰 김미경

사진 장은주

 

‘보잘것없는 블록버스터’를 꿈꾸는 만화가

웹툰 <유미의 세포들> 작가 이동건

 

여자가 그린 만화 아니었어?’, ‘이건 틀림없이 연애 많이 해본 남자가 그린 만화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알려주는 만’.

네이버 웹툰 <유미의 세포들>에 달린 댓글들을 보고 얻을 수 있는 단서는 다음과 같다. 1.남자 작가가 그린 만화 2.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 독자들의 폭발적인 공감을 얻고 있는 만화 3.연애와 사랑, 사람들의 속마음을 잘 읽어내는 탁월한 통찰력이 담겨 있는 만화라는 것.

30대 직장 여성 정유미와 그녀의 연인 구웅의 속마음을 세포의 이야기로 절묘하게 풀어내고 있는 <유미의 세포들>은 매회 1만 개가 넘는 댓글이 달리고, 2년의 연재기간동안 줄곧 10점 만점에 가까운 평점을 유지하고 있는 인기 웹툰이다. 데뷔작인 <달콤한 인생>을 그릴 때부터 여성 심리를 저격하는 공감툰 작가로 주목 받았던 이동건 작가는 <유미의 세포들>을 통해 평범한 남녀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과 사소한 감정들을 한층 탁월하게 그려내고 있다. 작품 속에선 별의별 감정들이 의인화되어 나타난다. 야밤의 폭식을 조장하는 출출 세포’, 꿈을 상영하는 꿈 세포’, 조신함을 관장하는 예의 세포와 본능이 이끄는 대로 행동하라고 부추기는 응큼 세포’, 심지어 유미가 술에 취해도 꼭 클렌징을 하고 자게 만드는 세수 세포와 누군가가 나를 향해 발사한 텔레파시를 접수하는 주문 접수 세포도 등장한다. 오직 유미만을 위해 살아가는 수많은 세포들을 보면 내 안에도 나만을 위해 살아가는 세포들이 있겠지싶어 마음이 뭉클해진다. <유미의 세포들>을 보다 보면 대전의 고유미, 일본의 요시무라 유미 등 세계의 유미들에게 텔레파시로 힘을 나눠주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처럼 교감과 연결, 격려의 메시지가 느껴지는 따뜻한 컷들을 이 작품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이동건 작가를 만난 후에 든 생각은 이런 사람이니까 이런 만화를 그리는구나라는 것이었다. 인터뷰 중간중간 감기에 걸리셨나 봐’, ‘커피는 원래 안 드시나요?’라고 물어오는 그의 모습은 마치 다정한 이웃집 언니 같았다. 잘것없는 사소한 행동과 마음들을 무심코 외면하지 않는 것. 그의 만화가 가진 사랑스러움을 그 역시 고스란히 품고 있었다.

 

나도 모르는 내 마음을 보여주는 만화

일주일 중 토요일이 유일하게 쉬는 날이라고 들었어요. 모처럼 쉬는 날에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원래 토요일이 쉬는 날인데 3월 달부터 브랜드 관련 일을 시작해서 오늘도 원고 작업을 하고 있어요. 주 2회 연재랑 병행하다 보니 굉장히 빠듯해요. 작품의 밀도가 낮은 편이 아닌 데다 만화 말고도 안 보이는 작업들을 많이 하고 있거든요.

 

더욱 바빠지셨군요. 어제 <유미의 세포들>이 업데이트 되자마자 바로 챙겨봤어요. 새로운 캐릭터인 한별 대리가 등장했는데, 유미와 웅이의 사랑을 방해하는 방해꾼 역할을 톡톡히 할 것 같던데요.

아마 그렇게 될 것 같아요. 근데 한별이가 어떤 일을 벌일지 저도 잘 모르겠어요.(웃음)

 

스토리 구상을 할 때 세부적인 설정까지는 안 하시나 봐요?

네. 도착지는 정해져 있는데 거기까지 가는 길이 자꾸 바뀌어요. 예를 들어 최종 결말은 두 사람이 헤어지는 것으로 확실히 정해져 있는데, 둘만의 문제로 헤어지게 만들지 제3자의 개입으로 트러블이 생겨서 헤어지게 만들지 그때그때 판단이 바뀌는 거죠. 그림을 그리다 보면 캐릭터의 감정선에 따라서 세부적인 내용이 달라져요. 그렇다고 애초에 제가 정해둔 목적지 자체가 바뀌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유미의 세포들>을 처음 연재할 때부터 결말은 미리 구상해놓으신 건가요?

처음 시작할 때는 유미와 웅이 사이에 웅이를 좋아하는 서새이라는 인물이 끼어들어서 벌어지는 이야기까지가 끝이었어요. 근데 편집부에서 안 놔주니까(웃음), 쉬는 동안에 다른 이야기를 더 생각해서 시즌2를 이어간 거죠. 길게 생각한 건 아니고 ‘이렇게 해야겠다’는 대충의 스토리 라인만 정했어요.

 

평점과 조회 수가 워낙 높다 보니 편집부에서 안 놔줄 만도 해요.(웃음) 작가님은 악플에 단련이 안돼 있을 것 같아요. 댓글 창 보니까 1만 개 넘는 댓글 중에 부정적인 내용은 거의 눈에 띄지 않던데요.

제가 멘탈이 약해서 댓글을 잘 안 봐요. 혹시라도 안 좋은 댓글을 보면 계속 곱씹게 되거든요. 이상하게 칭찬은 금방 날아가 버리고 악플은 마음에 오래 남더라구요. 심하게 공격적이거나 몰아붙이는 그런 댓글들은 아직 못 봤구요. 여태껏 제일 충격을 받았던 건 ‘이거 <인사이드 아웃> 표절 아니냐?’는 댓글이었어요.

 

<인사이드 아웃> 역시 사람의 감정들을 의인화한 애니메이션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죠. 비슷한 시기에 작품화가 되기도 했구요.

<유미의 세포들>이 연재되기 직전에 술자리에서 마인드C 작가님을 우연히 만났어요. ‘너 이번에 만화 들어간다며?’ 하시길래 어떤 내용인지 얘기를 했는데, ‘너 이 새끼, 표절!’ 이런 반응인 거예요.(웃음) 제가 연재하려는 내용이랑 비슷한 영화가 이미 만들어졌다고 하더라구요. 그래서 작가님이 말한 <인사이드 아웃>의 트레일러를 찾아봤는데 그것만 봐서는 내용이 잘 가늠이 안됐어요. 어쨌든 그렇게 <유미의 세포들> 연재가 시작됐고 3, 4개월 후에 국내에서 <인사이드 아웃>이 개봉했는데 정말 1등으로 보러 갔어요. 2등은 제 담당자. 같이 보러 가면서 ‘이거 겹치면 우리 다 죽는 거야’ 그런 분위기였어요.

보고 나서 어땠어요?

일단은 재밌게 봤어요. 다행히 제 만화랑은 풀어가는 이야기 자체가 다르더라구요. 보고 나서 안심이 됐어요. 지금도 생각하면 가슴이 떨려요. 그때 관람했던 영화 티켓도 안 버리고 아직 가지고 있어요.

 

오직 ‘그녀’만을 위해 살아가는 ‘그녀의 세포들’ 이야기

‘자존감이 낮은 편인데 <유미의 세포들>을 보다 보면 왠지 나를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댓글도 있었어요. 유미의 세포들은 오직 유미의 행복을 위해서만 움직이잖아요. ‘유미 덕후’라는 뜻의 ‘윰덕 세포’도 등장하구요. 오직 유미만을 위해 살아가는 수많은 세포들을 보면 ‘내 안에도 나만을 위해 살아가는 세포들이 있겠지’ 하는 생각에 마음이 적잖이 동요될 때가 있어요.

각자가 각자 인생의 주인공이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드라마를 보면 여자 주인공 옆에 친구가 등장하는데 그 친구는 꼭 자기 자신보다 친구의 인생에 더 관심이 많은 것처럼 보이잖아요. 그런 캐릭터를 보면 너무 신경이 쓰이는 거예요. ‘너도 니 삶이 있잖아. 걔가 그 남자랑 사귀든 말든 너가 뭔 상관이야? 니 연애나 해.’ 자꾸 그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공감해요. 그 조연 캐릭터는 자기의 서사를 펼치지 못하고 전적으로 주인공의 연애를 돕거나 아니면 방해하는 역할에만 머무르잖아요.

실생활에서도 그런 상황이 종종 있지 않나요? 언제나 세상의 주인공인 것처럼 행동하는 친구 옆에서 나 자신이 조연 캐릭터처럼 느껴지는 상황이요. 이를테면 학교 최고의 인기남하고 최고의 퀸카가 둘이서 눈이 맞은 것 같은 상황이 펼쳐지는 거예요. 실은 나도 그 여자애를 좋아하는데, 그냥 둘을 이어주는 역할이나 하게 될 때라든지 그런 상황이 있을 수 있죠. 그때 나는 ‘킹카의 친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한 여자를 동시에 좋아하는 ‘경쟁자’의 입장인 거예요. 그런 생각과 경험을 가지고 있다 보니 ‘1순위는 언제나 자기 자신’이라는 메시지가 제 만화에도 녹아 있는 것 같아요.

 

그래도 새이라든지 루비라든지 주인공의 사랑을 방해하는 인물로 나온 캐릭터들은 아무래도 독자들의 미움을 받게 되죠.

유미 캐릭터에 몰입해서 보면 머리를 쥐어뜯고 싶겠지만 막상 루비나 새이의 입장에 놓이면 누구라도 그들처럼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조연 캐릭터라도 그들의 행동에 대한 전후사정을 충분히 설명하려고 합니다. 사실 저는 ‘도덕 위에 내 마음이 있다’고 믿는데, 그래서 루비와 새이처럼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 과감하게 행동하거나 남들에게 욕을 먹을지언정 모험에 뛰어드는 그런 모습들도 짠하게 바라보게 돼요.

 

스스로의 작품에서 아쉽게 느껴지는 점이 있어요?

세이브 원고가 없이 거의 ‘생방송’으로 원고를 연재하고 있다 보니 아무래도 한계가 있는 것 같아요. 하루나 이틀, 한정된 시간 안에 한 회 차분의 내용을 다 생각해야 되니까요. 스토리를 이렇게 전개하면 나중에 어떤 부분이 걸릴 수 있다는 걸 미리 가늠해볼 여유가 없는 거죠. 아껴두고 싶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계속 원고를 막아야 하기 때문에 금방 써버릴 수밖에 없어요. ‘방망이 깎는 노인’의 심정으로 각 컷을 좀 더 정교하게 표현하다 보면 세이브가 다 날아가 버리거든요. 그럼 다시 ‘생방송’으로 가야 돼요. 근데 그게 웹툰 작가에게 주어진 바꿀 수 없는 조건이니까 어떻게든 그 조건 속에서 잘 그려내는 게 과제인 거죠.

 

드라마로 치면 ‘쪽대본’인 거네요. 하지만 최근의 추세로 보면 사전 제작 드라마가 오히려 하향세잖아요. 시청자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얘기를 하기도 하고, 이미 제작한 상태라 내용을 바꿀 수도 없고…. 이런 면에 있어선 독자들의 현실을 바로 캐치하고 현재의 트렌드를 반영할 수 있는 실시간 연재의 장점도 있을 것 같아요.

맞아요. 캐릭터를 데리고 나와서 어떤 사건을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심정적으로 누구의 편을 들지 제 판단이랑 다를 때가 있어요. 이를테면 저는 남자로서 구웅의 입장에 힘을 실어서 두 사람의 갈등 상황을 그렸는데 여자 독자들은 유미 편에 서서 ‘구웅 아웃!’ 이런 반응을 보이기도 하거든요. 그럼 전 ‘앗, 그런가?’ 하면서 마치 나도 그렇게 예상했다는 것처럼 스토리를 수정할 때가 있어요. 억지로 독자랑 기싸움할 수는 없으니까요.(웃음)

‘여자는 이래’라고 관습적으로 단정 짓지 않기

웹툰 작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가 있나요?

처음부터 웹툰 작가가 되려고 했던 건 아니에요. 2O대 땐 밴드에서 베이시스트로 활동하기도 했고, 일반 회사원이던 시절도 있었어요. 웹툰을 그리게 된 건 제가 만들던 물건을 홍보하기 위해서였어요. 당시 제가 다이어리 용 스티커나 포스트잇 등 디자인 문구를 만들어서 파는 일을 했었는데, 물건이 너무 안 팔리는 거예요. 예쁘게 만들었으니까 잘 팔릴 거라는 자신이 있었는데 하루에 한 개도 못 팔 때도 있었어요. 많이 팔아도 한 달 수익이 20만 원이 안 되더라구요. 큰일났다 싶었죠. 그래서 제품 홍보를 하려고 제품 캐릭터로 만화를 만든 거예요. 회사 이름이 ‘달콤한 회사’였는데 그걸 응용해서 <달콤한 인생>이라는 만화를 네이버 ‘도전만화’에 올린 게 저의 첫 데뷔였어요. 그게 2012년의 일이에요. ‘도전만화’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서 ‘베스트 도전’까지 오르게 됐을 때 ‘이제 물건이 잘 팔리겠지?’ 하고 꿈에 부풀었는데 불행히도 판매량이 늘지는 않더라구요.(웃음) 그 대신 작은 업체들한테서 그림에 관련된 외주 문의가 들어오면서 ‘잘하면 밥 먹고 살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겼어요.

 

작가, 장르, 연재처에 따라 웹툰의 고료와 대우가 천차만별이라고 들었어요. 처음 만화를 시작할 때와 지금의 수익을 비교하면 크게 차이가 있나요?

처음이랑 비교하면 꽤 많이 벌고 있어요. 간혹 친구들을 만나면 ‘그거 돈은 받고 하는 거냐?’라고 묻는 애들도 있는데,(웃음) 원고료뿐 아니라 작품에 따라붙는 광고 수익, 기업들이 제 만화를 사용하면서 지불하는 저작권료 등의 부수적인 수익도 커요. 예전이랑 다르게 창작자들을 위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거든요. 웹툰 작가는 참 좋은 직업인 것 같습니다.(웃음)

 

그래도 장점만 있는 건 아니지 않아요?

단점도 있죠. 남들은 일상적으로 누리는 걸 나는 못 누릴 때가 꽤 있어요. 일단 쇼핑을 마음껏 못해요. 제가 옷이랑 신발에 관심이 많은데, 바깥에 나갈 일이 없으니까 신발을 살 명분이 없는 거예요. 미용실도 서너 달에 한 번쯤 가는데 가면 미용사가 놀라요. 머털도사처럼 더벅머리를 해가지고 가니까 뭐 하는 분이냐고 묻더라구요.(웃음) 때로는 회사 나가는 사람이 너무 부러울 때가 있어요. 아침에 출근해서 동료랑 커피 한 잔 하면서 요즘 뉴스라든지 어제 뭘 했는지 그런 사소한 얘기들을 나누고 싶기도 하고, 야근하면서 투덜대고 이런 것까지 괜히 해보고 싶다니까요.

 

장점에 비하면 사소한 단점처럼 보이는데요? 밴드 출신답게 만화 작업할 때 하루 종일 이어폰을 끼고 있다고 들었는데, 요즘 힘을 주는 노동요가 있다면?

트로트 빼고는 장르별로 안 가리고 다 들어요. 너무 올드해지지 않으려고 신곡도 일부러 찾아서 듣는데 최근엔 볼빨간 사춘기의 <반지>라는 곡을 자주 들어요. 헤어진 다음에 반지를 빼서 남자친구한테 건네준다는 내용인 것 같은데, 노래를 들으면 그 장면이 저절로 상상이 돼요. 1990년대~2000년대 초반만 해도 노래 가사를 들으면 여자들은 사랑 앞에서 슬퍼하기만 하고 그런 느낌이었는데, 이젠 그렇지 않게 표현을 하니까 듣기 좋더라구요. 카라의 <똑같은 맘>이라는 곡을 듣고서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서로의 온도 차이를 느끼는 내용을 만화로 그리기도 했어요. 노래를 들으면서 작업을 하면 더욱 깊게 몰입이 되는 것 같아요. 이 만화가 영상화가 된다면 OST로 어울릴만한 노래들이 제 머릿속에서 저절로 재생이 돼요.

 

데뷔작 <달콤한 인생>도 그렇고, <유미의 세포들>도 그렇고 작품을 보면서 여성의 심리묘사에 능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작가님이 여자인 줄 알았다는 댓글도 매주 달리잖아요. 여자 마음을 잘 아는 건 연애 경험이 많아서인가요?

그건 아니구요.(웃음) 제 친구 중에 너무 잘생겨서 가만히 있어도 여자들이 가만 두질 않는 친구가 있어요. 이 친구는 연애를 되게 많이 하는데도 가만 보면 연애에 능한 것 같지는 않아요. 상대방을 고려하기보단 자기가 생각하는 대로 하는 게 맞다고 확신하거든요. 이 친구는 뭘 해도 다 받아들여지니까 그렇겠죠. 저 같은 경우는 반대예요. 연애가 너무 하고 싶은데 애인이 안 생기니까 열심히 그녀를 관찰해야 되는 거죠.(웃음) ‘왜 저 옷을 입었을까?’, ‘무엇을 좋아할까?’ 그런 것들에 대해서요. 누구를 좋아하면 그 사람에 대해 관심이 생기고, 그 사람의 ‘덕후’가 되잖아요. 저는 그런 삶을 살았던 거죠. 잘은 모르겠지만 그런 제 경험이 만화에 녹아 제 만화가 공감을 얻는 것 같아요.

 

솔직한 고백이시네요.(웃음) 작년 한 해 동안 뉴스의 사회란이라든지 인터넷에선 ‘여혐’이라는 단어를 중심으로 남녀가 극렬하게 분열되는 구도를 자주 볼 수 있었어요. 창작자들의 젠더 감수성이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평가받는 시기에 남성 작가로서 여성의 심리를 대변하며 표현하는 것이 부담스럽진 않았나요?

사실 처음엔 큰 자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설혹 여성들이 불편해하거나 오해할만한 소지가 있는 장면이 있다 하더라도 내가 떳떳하면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난 그런 의도가 아니야. 자세히 봐봐.’ 이런 입장이었죠. 근데 요즘 댓글이나 SNS 등을 보면서 제가 몰랐던 걸 많이 배우고 있어요. ‘아, 이 장면이 이렇게 보일 수도 있구나’ 하면서요. 아내의 솔직한 피드백도 작품을 그리는 데 도움이 돼요. ‘남자는 이래, 여자는 이래’라고 관습적으로 단정 짓지 않으려고 최대한 신경 쓰고 있어요.

 

남자 캐릭터를 그릴 때도 제약을 많이 받으시나요?

더 어렵죠. 왜냐하면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 웅이의 세포가 처음 등장했을 때 수위를 놓고 정말 고민했어요. 머릿속에 있는 걸 그대로 표현하면 네이버에서 잘릴지도 몰라요.(웃음)

 

잘릴 정도예요?(웃음) 그래도 ‘응큼 세포’ 캐릭터를 통해서 응큼하지만 귀엽게, 적절히 완급조절을 잘하고 계신 것 같아요. 가장 애착이 가는 세포가 있다면?

‘세수 세포’요. 이름에서도 느껴지듯이 그 에피소드를 위해서 세포를 즉흥적으로 만들었어요. 사실 아내가 화장 지우는 걸 정말 귀찮아하거든요. 퇴근해서 집에 오면 화장을 안 지우고 침대에 막 드러눕는 걸 보고 생각했어요. ‘내 아내는 세수 세포의 힘이 되게 약한가 보다.’(웃음) 그렇게 만들어진 캐릭터인데 왠지 여자분들이 공감을 많이 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애정이 더 가요.

 

등장인물마다 각자의 ‘프라임 세포’가 따로 있잖아요.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세포라는 뜻인데, 작가님의 프라임 세포는 뭐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변덕세포인 것 같아요. 나쁘게 말하면 변덕이고 좋게 말하면 유연함. 애초에 생각했던 것들을 잘 뒤집는데, 그런 변덕이 창작 생활에는 유용한 것 같아요.

 

차기작도 구상하고 있으신가요? 앞으로 어떤 작품을 그리고 싶은지 궁금해요.

평소에 ‘보잘것없는 블록버스터’라는 표현을 자주 써요. 어떻게 보자면 제가 그리는 내용들이 사실은 보잘것없는 것들이에요. 여자친구랑 싸우고 화해하고 그런 건 굉장히 흔한 얘기잖아요. 근데 세포 단위에서 보면 그게 또 굉장한 블록버스터거든요. 마음속에선 파도가 치고 난리가 나니까. 하늘에서 운석이 떨어지고 하는 거대한 뉴스가 아니라 단지 누구를 만나고 연애하고 울며불며 붙잡고 이런 사소한 것들로 우리들은 죽네 사네 하잖아요. 사람들의 그런 생활 이야기를 좀 더 블록버스터처럼 그리고 싶다는 소망이 있어요. 왜냐면 나한테는 그것들 모두가 진짜로 블록버스터거든요.

이동건

디자인문구 1인기업 달콤한 회사를 차린 후 제품 홍보를 위해 그린 만화 <달콤한 인생>을 통해 얼떨결에 네이버 웹툰 작가로 데뷔했다. 깔끔하고 아기자기한 그림체, 섬세한 여성 심리 스토리텔링으로 여성 독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고 있으며, 30대 직장인 유미의 일상과 사랑 이야기를 세포의 관점에서 섬세하고 참신하게 풀어낸 <유미의 세포들>2016오늘의 우리 만화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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